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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

특발성 척수공동증

김염황. 신경-두개골-척추 증후군. 종사 질병. 소뇌 편도 밀착. 척수 내 낭포. 척추 만곡. L5-S1 좌측 추간판 헤르니아. C5-C6 추간판 돌출.

Publicado por ICSEB el 26 11월, 2021

업데이트 날짜: 2021년 10월 19일


안녕하세요. 후기 업데이트를 위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2016년 10월에 했으니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네요.
수술 전에 있던 어지럼증, 팔다리 통증과 같은 증상들은 이제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빼고는 평소에 거의 없습니다.
아주 가끔 꼬리 뼈 통증이나 엉덩이 밑 통증이 있는데 이것도 며칠 지나면 다시 좋아지곤 합니다.
근육통도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줄어들었고, 악력 또한 확실히 좋아졌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수술 전에는 복압 관련해서 운동에 제한이 많았으나, 수술 후에는 무리 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운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건강해졌습니다.
이번에 후기를 업데이트하며 척수공동증이라는 병을 알고 수술 받기 전까지 아팠던 과정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니
현재와 같이 아프지 않은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항상 스페인 연구소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Correo electrónico: [email protected] 


 

수술 날짜: 2016년 10월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 살고있는 Kim Yeom hwang 입니다.
처음 증상이 있었던 것은 2015년 6월이였고 원인을 알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MRI 3번을찍고 나서야 대학병원에서 척수공동증 판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분들은 제 척수공동증의 크기를 보시고는 이정도로는 증상이 크게 나타나지않는다. 제가 너무 예민하다고만 말씀하시고 다른 원인이 있는게 아닐까 하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였으나, 별다른 병은 없었습니다. 처음 증상이 있을 때는 어지러움과 팔, 다리 저림이 너무 심했고 한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서 바르셀로나 연구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척수공동증 진단을 받아도 1년뒤에 MRI를 다시 촬영 하자는 말밖에 듣지 못하였기에 연구소의 후기들과 병의 연구에 관한 글은 저에게 매우 희망적이였습니다.
1년뒤에 병을 처음 알았을 때의 증상보다는 몸이 약간 호전이 되었지만, 가만히 기다릴수만은 없었기에 바르셀로나 연구소에 가기로 결심 하였습니다. 연구소의 경험은 정말 좋았습니다. 제 담당의사선생님은 여러가지 검사를 하셨고 MRI를 보시면서 저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 너무 감사했고 병을 진행을 멈춘다는 담당의사선생님의 말씀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증상이 심한편이 아니였지만 어지러움과 간혈적 손발저림이과 병의 진행을 더 이상 막기 위해 수술을 결심했고 수술후의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어지러움은 정말 크게 줄어들었으며 병을 알기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였습니다. 통증은 수술부위인 꼬리뼈의 통증만 아주 약간 있었고 이 통증 조차 심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후 3일뒤에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스페인의 멋진 날씨와 건물들을 관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 3개월뒤쯤에 몸의 증상이 다시 나타났지만 2주정도 뒤에 다시 몸이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고, 증상이 왔다 갔다 한다는 점은 미리 연구소측에서도 설명을 해주셨던 부분이 였습니다.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척수공동증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증상들이 같이 호전이 되어 신기했습니다. 바른 자세를 하는 것이 예전에는 정말로 힘들었으나 수술 후에는 곧은 자세를 유지하기가 정말 쉬웠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귓속의 통증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비인후과를 갔으나 이점도 사라졌습니다. 악력은 정말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이 느껴집니다. 이 증상 말고도 뒷목 떨림, 손목 발목 뜨거움 등 여러가지 증상들이 많이 개선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침에 조깅도 하고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데드리프트를 하면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과 같았으면 유산소운동만해도 근육통이 심하여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운동을 해도 몸이 정말 편합니다. 예전에는 손발에 힘이 빠지는 증상들과 어지러움으로 인해 1년간은 정말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 생활 이였습니다. 그러나 수술 후에는 삶이 활동적으로 변했습니다. 몸이 지금처럼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바랠 정도로 상태가 좋습니다. 가끔씩 증상이 나타났다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정말 경미한 수준이며 일상생활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습니다. 또한 수술 후 7개월밖에 되지않았고 현재 몸의 많은 점이 호전이 된 만큼 앞으로 더욱 몸이 호전 될 것 이라고 저는 믿고있습니다.
연구소를 만들어주신 Dr. Miguel B. Royo Salvador와 제 담당의사 선생님이셨던 친절하신 Dr. Horia Calin Salca , 마지막에 귀국하기전에 상담 해주신 Dr. Marco Fiallos Rivera 그리고 연구소에 가기전부터해서 지금까지 계속 병 관련으로 상담해주시는 김샛별님을 포함한 희귀성난치병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연구소의 모든 의사선생님, 직원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꼭 다시 뵙고 싶고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멋진 스페인의 풍경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Ellos me dieron una nueva vida. Gracias! Adios!

Dayse Aparecida Ferreira. 신경-두개골-척추 증후군,소뇌 편도 하강(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척수내 낭포(특발성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1 1월, 2018
수술 날짜: 2017 3    

저는 34세 Dayse입니다. 28살 때부터 저는 왔다가 사라지곤 했던 원인 모를 통증이 있었습니다.
2014년 7월, 이 통증의 강도가 세져서 응급실을 갔어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통증이 아주 심했습니다. 거기에서 요통, 우울증, 섬유근육통을 진단받았습니다. 그들의 약을 포함해서 그들의 의학적 처방 지시를 따랐는데 통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정말 센 통증으로 병원에 찾아갔는데 당직 의사에게 더는 이 통증을 참을 수 없다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약을 복용해야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의사는 척추 MRI(요천추 부위)를 지시했고 결과를 보고 정형외과로 저를 보냈습니다.
정형외과 의사는 제 영상을 보고는 무언가 이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설명해주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척추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인터넷으로 “척수공동증”이라는 용어를 찾았습니다. 모든 검색 결과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척수의 퇴행소병, 료법이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휠체생활을 하게 가능성이 있음.” 그때, 저는 제가 “폭탄”을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 인터넷 검색으로, 저는 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 홈페이지를 찾아냈는데 그곳의 정보에 대해 크게 믿진 않았습니다. 다른 사이트에서 읽은 것과 정반대의 이야길 했기 때문입니다.
병에 대해 더 조사한 뒤, 저는 환자들로 이뤄진 페이스북 그룹 몇 개를 알게 됐습니다. 그룹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저는 그 즉시 이 병이 그렇게 희귀한 병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서 저는 바르셀로나에서 수술을 받은 몇 분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들의 수술 후기는 정말 좋았으며 브라질에서 종래의 기법으로 수술 받은 사람들의 수술 후기와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연구소에 제 의료 진단서를 보냈고 제가 신경-두개골-척추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명시된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척수공동증 이외에도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술 예산서 또한 받았습니다.
2016년 4월, 저는 필요한 비용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기간은 거의 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3월 21일, 제가 그렇게 바라던 종사 절단 수술이 현실이 됐습니다. 수술 8시간 후, 양다리와 양팔의 근력 회복 같은 눈에 띄는 호전이 관찰됐습니다. 10일 후, 수술 후 검진에서 다른 호전이 보여졌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운동 기능이 떨어졌던 오른팔과 다른 세 부분의 반사항진이 줄어든 점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반사 반응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증상 호전은 수술 후 1년이 지나야만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호전은 뒷덜미, 경추부, 오른쪽 어깨, 요추부에 있었던 계속되던 통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삶의 질이 개선됐습니다. 현재 수술 후 3개월이 지났고 수술 이후로 항우울증약을 더는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제 통증이 심리적 문제에서 온다며 처방해준 약이었습니다.)
연구소 의사들은 이 수술로 병의 진행을 막는다고 했지만 저는 이것 이상이며, 제 인생에서 가장 돈을 잘 쓴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이 꿈을 현실화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법의 장점을 누릴 수 있도록 저와 다른 분들의 수술 후기가 여기 우리나라 의사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락 이메일: [email protected]

Abdallah Faisal Aljohani. 신경 두개골 척추 증후군, 종사 질병.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특발성 척추측만증. 다수의 추간판질환.

Publicado por ICSEB el 23 12월, 2016

수술 날짜: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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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15세 아이, Abedellah의 아빠 Faisal이라고 합니다. 제 아들의 살과 뼈를 깎는 고통을 아이 엄마와 제가 지켜봤기 때문에 아들의 이야기를 제가 해보려고 합니다.

Abdallah의 문제는 왼손 위축증과 좌측 몸 절반의 감각이 50% 가까이 떨어지는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후, 어지럼증, 경부 근육 수축, 흉부통 등 더 많은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증상들은 아들이 말에서 낙상한 뒤 더 심해졌습니다.

2015년 이후 아들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고 그때, 우리나라 의사에게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았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수술을 급히 받아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많이 망설였고 인터넷으로 이 분야의 유명 전문의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Royo Salvador 의사와 그의 훌륭한 의료진, 저희를 잘 돌봐주신 Marcos Fiallos 의사,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를 발견했습니다.

그 즉시 아랍어 담당인 Safaa El Idrissi씨를 통해 연구소와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녀는 저희가 2016년 4월 20일에 초진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도와준 “무명용사”였습니다. 진료 후, 담당의는 제 아들이 종사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주셨고 4월 21일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Abdallah의 상태는 뚜렷하게 완화됐습니다. Marcos Fiallos 의사선생님과 Safaa씨 그리고 나머지 연구소 직원들께 감사드립니다.

환자 아버지 Faisal Saad Al-Juhani 연락처: [email protected]


Barbara Blache. 특발성 척추측만증 및 척수공동증을 동반한 척수 견인 증후군.

Publicado por ICSEB el 23 1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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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9년 2월

francia

저는 41세 프랑스인이며 특발성 척수공동증 및 척추측만증과 D6/D7 추간판 헤르니아가 있습니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는 더 병이 <악화>되는 경우에 배액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척수의 뇌척수액을 배액하는 공격적인 수술이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재수술을 하는 수술이었습니다. (물론,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2008년 말, 병이 악화되어 지팡이로 걸어야 했고 가끔은 지팡이 두 개가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가끔 휠체어를 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왼쪽 몸의 감각 이상, 저림, 감전되는 느낌으로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요실금 증상, 편두통, 가끔 길 한복판에서 실신을 유발했던 현기증 또한 있었습니다. 장애인 관련 정부 부서에서 80%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아, 집안일을 해주는 헬퍼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운전은 거의 할 수 없었고 저는 <죄수> 같은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동안 의사들은 절 허언증 환자처럼 취급했으며(특히 발병 초기) 약을 과다 복용했습니다. 인터넷 카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이 질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외과 수술법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의사 ROYO의 전체적이고 진지한 진찰을 받았고 의료 진단을 받은 후, 2009년 2월 10일에 바르셀로나에서 의사 Royo의 종사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수술은 제 삶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수술 첫날부터 큰 변화를 느꼈습니다. 첫 번째로, 일어섰을 때 발 아래 지면의 찬 온도를 느꼈고 신경병성 통증으로 더는 힘들지 않았으며 다리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퇴원할 때 더이상 다리를 절며 걷지 않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9년 동안 완전히 절 이해 못 했고 그로 인해 무려 9년 동안 고통받았어야 했습니다. (2000년에 척수공동증을 발견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수술 후 몇 주 동안 “아팠던 위기”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나, 전에 겪었던 통증과는 비교 되지 않는 약한 통증이었고 진통제를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치료도, 재활 치료도 목발도 필요 없습니다.

다른 증상들은 몇 달이 지난 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남아있었던 현기증 증상은 2012년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울퉁불퉁한 땅에서도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었습니다.

2015년 1월 14일인 오늘, 변화된 제 상태를 확인하고 반사 운동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는지 확신하기 위해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에 수술 후 검진을 왔습니다. 제 상태가 95% 회복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5%는 촉진 검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등 통증과 척추 부근 약간의 저림, 점점 빈도가 줄어드는 좌 상지 약한 통증입니다. 통증이 자연스레 사라져서 약 복용 필요성도 없습니다. 반사 반응에서는, 양 발 반사만 아주 “약간” 비정상적입니다. 현재 제 상태는 아주 좋으며 5년 반 전부터 풀타임 방문 도우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의사 Royo와 그 의료진에게 그들의 환대와 직업의식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SFT 수술과 그들이 없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저는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사 Royo는 제게 완치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운이 좋아 이만큼 기능 회복을 할 수 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자 신체의 반응은 각 환자마다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Mrs. Barbara BLACHE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제게 연락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Oleg Li.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소뇌 편도 하강, 척수공동증, 다수의 추간판병증.

Publicado por ICSEB el 18 2월, 2014

oleg_li

수술 날짜: 2013년 12월

kazajistan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카자흐스탄 Almaty에 사는 36세 Oleg라고 합니다. 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팀, 특히 의사 Royo와 Nina씨께 큰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유년시절부터 척추측만증을 앓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했고 운동으로 인한 또는 별개의 외상을 많이 입었습니다. 중증 척추측만증으로 군대 면제를 받았습니다. 20세부터는 왼손 근위축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온도 감각과 촉각도 사라졌습니다. 팔의 움직임이 제한되기 시작했으며 팔 힘도 빠져갔습니다. 모든 것은 척추측만증이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이 같은 불편함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계속 생활했습니다. 척추측만증의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30살 때, 손 근육이 더 위축됐으며 심한 두통 증상 발현과 흉부 및 요추부 통증, 혈압 상승, 면역력 저하로 자주 아팠습니다. 이와 더불어 쉽게 피로감과 무기력을 느꼈고 쉽게 화를 냈습니다. 운동이 제게 도움이 됐고 제 상태도 한동안은 완화됐습니다. 하지만 왼손은 계속 위축되어 악력도 감소돼갔습니다. 35세에는 다리에 저림이 시작됐고 두통, 흉부 통증 및 요통이 더 심해졌습니다. 2013년 10월, 36세경 신경 병리학자인 어머니의 제안으로(어머니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몇 가지 검사를 했고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및 특발성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인터넷과 상담 등올 통해 이 질병 치료법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냈고 제게 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의 수술을 알려줬습니다. 수술과 치료법에 대한 정보와 환자 수술 후기를 모두 읽고 저는 수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2013년 12월 17일, 저는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특발성 척수공동증 및 척추측만증으로 종사 시스템®을 통한 종사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연구소의 직업의식과 높은 수준의 환자 관리에 매우 놀랐습니다. 그전까지 한번도 이렇게 훌륭한 환자 이해와 케어를 받아본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수술이 매우 전문적인 수준으로 이뤄졌고 제 질병의 원인은 제거됐으며 그 예정됐던 진행 또한 멈췄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지금 저는 질병 때문에 휠체어 생활을 탈 수도 있다는 공포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의사 Miguel B.Royo Salvador와 그의 팀을 알게 돼 매우 행복합니다.

저는 관련 질병을 앓고 계신 모든 사람에게 의사 Royo와 그 의료진, 그들의 직업 의식과 훌륭한 업적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의사 Royo와 그의 팀의 건강과 행복, 번영을 바라고 환자들이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아카데미의 성공 또한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Nina씨와 의사 Fiallos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 첫 방문이었는데 도시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따뜻함에 감동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핸드폰 번호: +7 701 715 08 00

Violetta.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2 9월, 2013

수술 날짜: 2011년 10월

rusia

안녕하세요!

저희 딸은 6살 때부터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왼발과 관련된 문제였고 왼발로 완전히 바닥을 밟지 못하고 뒷축이 항상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았습니다. 척추측만증이 생겨서 한쪽 어깨가 다른쪽보다 더 높았고 양 발을 똑바로 딛어 서있지 못했습니다. 또한 생활 태도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2010년 3월경, 등 MRI를 찍으면서 척수공동증(syringohydromyelia)을 진단받았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1년 반 동안 많은 신경외과 진료를 보고 정보를 찾기 시작했으나 불행하게도 저희에게 확신을 주고 저희가 믿을 수 있는 의료진이 없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저희 마음을 이해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조사를 했고 2011년 8월에 인터넷에서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를 발견했습니다. 연구소에 영상을 보냈고 메일을 주고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 수술 비용은 고액이었지만, 제 딸의 건강이 더 값지고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대출을 받아 바르셀로나로 갔습니다. 그리고 2011년 10월 25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 Royo는 저를 안심시켰고 제게 확신을 줬습니다. 수술은 매우 잘 끝났고 10월 30일에 이미 저희는 Tibidabo에서 저희 딸의 9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증상 호전은 수술 즉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조금씩 양 어깨 높이가 같아졌고 현재, 왼쪽발로 제대로 땅을 밟을 수 있습니다. 2013년 5월에 찍은 MRI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키아리 연구소와 CIMA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과 Nina씨, 그리고 빠질 수 없는 Royo 의사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Svetlana, Violetta의 엄마, [email protected]

Paolo Buscemi. 경미한 흉추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특발성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5 3월, 2013

paolo_bucemi

수술 날짜: 2011년 7월

italia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시실리아 출신 27세 Paolo Buscemi라고 합니다. 여러분께 제 질병을 알게 된 사연과 Royo 의사의 수술에 대한 제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합니다. 모든 것은 2011년 시작됐습니다. 1월에 이상한 느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손의 경직, 손의 악력 저하(자주 손에 있는 물건을 떨어뜨렸습니다.), 경부통, 팔의 통증, 삼키는 데 어려움, 소변 볼 때 불편함. 신경과 의사의 제안에 따라 MRI를 찍었고 C2에서 C5까지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았습니다. 그 즉시 제 신경과 담당의는 밀라노의 한 전문의를 소개해줬습니다. 그 의사의 진료를 봤는데 그는 제게 척수공동증이 뭔지 전반적으로 설명했습니다. MRI 영상 판독지를 본 후 수술을 해야 하며 두 종류의 방법이 있는데 제 경우는 더 어려운 수술일뿐만 아니라 수술 경과에 대해서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 수술 시간은 12시간이 넘으며 “형성술”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녹초가 돼서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저는 제 어머니와 제 동생과 같이 있었는데, 제 차례 후 같은 의사가 집도한 수술을 받은 어떤 한 아주머니가 수술 후 검진을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의 제안으로 그 아주머니께 정보를 요청하기 위해 나오시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아주머니가 나오셨을 때, 지금은 기분이 어떠시며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여쭤봤습니다. 저희의 질문에 흔쾌히 응하셨고 그녀는 12시간짜리 수술을 받으셨고 천천히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아직 유창하게 말은 하지 못하셨습니다.)그리고 척수공동증에 전문화된 병원이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것을 들어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피곤하고 우울하고 혼란된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 저는 조금 쉬려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모든 대화를 들었던 제 동생은 인터넷으로 그 아주머니가 말해주셨던 센터를 찾아냈습니다. 그 센터는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였습니다. 질병에 대한 정보와 그 치료 방법들에 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주의 깊게 연구소 홈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소 소장인 Royo 의사가 특발성 척수공동증에 종사 절단 수술을 하며 수술은 30분 정도 걸리고 전혀 침습적이지 않고 “형성술”과 비슷한 그 어떤 것도 삽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읽었을 때 저희 모두는 다시 활기를 찾았습니다. 저희는 저처럼 희귀하고 퇴행성 질병에 걸렸었던 환자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처럼 키아리 연구소를 믿었던 환자들의 수술 후기를 읽었습니다. 모든 후기가 긍정적이었고 수술 결과 또한 긍정적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행하게도 이탈리아의 이 질병에 관한 무지 때문에 많은 시간이 지난 후 키아리 센터에 도착했다고 말했습니다. 키아리 연구소의 발견에 대해 제 신경과 담당의와 상담했습니다. 처음에 의사는 연구소를 신뢰하지 않아 홈페이지를 보고 싶어 했지만 결국에는 모두 다 괜찮다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Royo 의사와 같은 수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알아봤습니다. Royo 의사의 제자인 척 하는 많은 의사가 있었지만 다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키아리 연구소의 진료를 예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Royo 의사 팀의 이탈리아어 담당자인 Gioia Luè씨가 답변을 했고 2011년 7월 11월로 진료 날짜를 예약해줬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랑 함께 진료를 보러 갔고 Royo 의사는 제가 가져간 서류들을 검토 및 진료 뒤 다음과 같은 질병을 발견했습니다.: 척수 견인 증후군, C2에서 C5까지 척수공동증, 경미한 흉추 척추측만증. 바로 저흴 안심하게 했던 것은 제 특발성 척수공동증에 대한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날, CIMA 병원에서 모든 수술 전 검사를 했고 하루 뒤, 아침 8시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한 달 후, 첫 검진을 위해 스페인을 다시 방문했고 더 많은 호전이 있었습니다. 생에 처음으로 제 척수가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수술 2년 후인 지금, 제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제 후기가 길을 잃은 사람들의 희망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분께, 특히 제게 심리학적으로 지지해주시고 저를 진정시켜주신 Gioia씨와 제 병의 진행을 멈춰주신 Royo 의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제 경우에는 증상들 또한 사라졌습니다. Royo 의사에 대해 제가 가장 놀랐던 점은 바로 놀라운 실력에도 매우 겸손한 그의 인간성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제게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제 연락처입니다.:

0039 (0)925 951719

Paolo Buscemi

Paolo씨의 영상 후기

María.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흉수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25 10월, 2012

수술 날짜: 2011년 6월

francia

모든 것은 2008년 제가 18살밖에 안됐을 무렵 시작됐습니다. 이상한 통증, 현기증, 균형 잃음, 근 경련, 사지 쇠약감 등 더 많은 것이 있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이 의사는 시험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고 즉시 생각했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뇌 CT 검사를 했지만 아무것도 결론지을 수 없었습니다. 상기 증상으로 거의 걸을 수 없게 되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기까지 다양한 병원 진료를 봤습니다.

1년 동안 다음과 같은 곳을 방문했습니다.:

–     다수의 주치의 진료

–     이비인후과(현기증이 원인이 내이 때문인지 보기 위해)

–     족부 전문의(Podiatrist, 그들은 걷기 어려웠던 문제가 제 발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물리 치료(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등 문제 때문에)

–     심장병 전문의

–     정맥학 전문의(그들은 혈액 순환의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것에도 귀결되지 않는 것을 보며(진료과 이름만 말했지만 의사들이 시켰던 다양한 검사의 이름은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주치의는 그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검사인 척수 MRI를 찍게 했습니다. 일상적인 삶이 불가능했고 이동할 때의 어려움 이외에 앉아있을 때도 참기 어려운 심한 현기증이 있었습니다. 누워있을 때도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편히 있을 수 있는 순간은 잠 잘 때 뿐이었습니다. 그 이외 시간은 정말 지옥이었습니다.

척수 MRI를 찍으면서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소용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D8과 D10에 척수공동성 낭포”가 있다는 것을 읽고선 정말 놀랐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인터넷으로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검색한 뒤, 제 삶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페이지에서 상태가 계속 악화될 것이며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거나 식물인간까지 될 많은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주치의를 찾아갔는데 이 병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뭐, 병명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만나본 적 없다고 했습니다. 희귀하고 심한 병이라고 하며 신경과 전문의가 제 질문에 잘 답해줄 적임자라고 말해줬습니다.

신경과 진료를 봤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물이 들어있는 작은 공동일 뿐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걱정말라.” 제 증상과 병에 대해 제가 이해한 것들을 생각해봤을 때, 이상한 답변으로 들렸습니다.

항상 화가 나 있었고 아픈 상태로 인터넷에 있는 카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하고 있는 한 수술에 대해 이야기 했었는데 위험한 수술이었고 상태가 더 악화된 수술받은 환자 사례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 수술은 받을 생각이 없던 차에 Royo 의사의 홈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수술 후기를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다 맞는 말인지 확신하기 위해 수술한 환자와 연락을 취했고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때까지 예산은 준비되지 않았었는데, 고통은 그보다 더해서 이 질병 전문으로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인 Kremlin Bicetre의 진료를 보러 갔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제 상태에서는 수술하지 않는다고 했고 휠체어가 필요한 상태에서만 프랑스의 방식으로 수술한다 했습니다. 그리고 Royo 의사는 “사기꾼”이라고 했습니다. 절망하며 진료실에서 나왔습니다. 하루하루 악화되는 제 상태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이 의사가 척수공동증 관련해 제가 진료를 본 마지막 프랑스 의사였습니다. 바르셀로나 수술 관련한 긍정적인 것들을 들으며 거기서 수술을 받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Estelle씨와 제게 답변을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메일로 연구소와 연락을 했고 그들은 제 사례가 수술에 적합한 사롄지 확인할 수 있도록 연구소 진료를 보러 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여행길에 오르기 위해 남은 힘을 다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때가 2010년 2월이었습니다. 이 연구소와 종사 수술은 제 유일한 기회였고 거기에 제 희망을 다 걸었습니다.

수술 가능하다고 Royo 의사가 말해주셨고 모든 세포들이 아직 괴사하지 않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런 뒤 제 적은 학생 월급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수술받은 환자들과 이야기했고 Royo 의사 홈페이지의 수술 후기도 읽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인터넷 카페에서 매일매일 자신의 악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프랑스 환자들을 잊어버리는 게 나았습니다. 그 뒤 몇 개월 간, 증상들이 약간 나아진 날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악화돼 위태위태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행동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저축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오늘로부터 1년 4개월 전인 2011년 6월 27일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클리닉은 프랑스 병원이나 클리닉보다 훨씬 더 현대적이었고 의료진은 전문적이고 상냥했습니다. (이는 환자들에게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대부분의 환자들과는 다르게, 저는 수술 직후 놀라운 변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증상은 그대로였습니다. 인내심으로 저를 무장시켜야 했습니다. 제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수술 한 달 후 검진에서 반사 반응을 회복했고 손의 악력도 10kg가 더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수술 전에는 18kg였는데 놀랍게도 수술 한 달 뒤 28kg로 증가했습니다.) 위태위태했던 현기증 때문에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랜시간 동안(3년 간의 증상) 압박을 받았던 제 척수가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을 상기시켜줬습니다. 수술받은지 1년이 넘은 현재, 저는 거의 제 모든 증상이 없어졌고, 그 전보다 나아졌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90%를 회복해서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합니다. 저는 수술에 매우 만족했고 연구소 의료진의 직업 정신과 따뜻함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힘든 시련 동안 제 옆에 있어준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혹시 있을 질문을 위해 제 연락처를 남깁니다.

[email protected]

Joaquina Herrezuelo. 특발성 견인 증후군. C6-C7 y T9-T10

Publicado por ICSEB el 25 7월, 2012

joaquina_herrezuelo

수술 날짜: 2012년 6월

안녕하세요, 저는 스페인 Valladolid에 사는 54세 Joaquina라고 합니다. 제 문제는 직장에서 사고로 어깨가 골절됐을 때인 2008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사립 병원에서 MRI 검사 후 척수공동증을 발견했지만 그 병원 의료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수술의 결과로 모든 게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등이 아프기 시작해서(그전엔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앉거나 걸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었습니다. 응급실에 갔는데 그들이 제게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처방은 진통제뿐이었고 어깨에서 오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습니다. 너무 많은 모르핀 패치와 약으로 독성 간염에 걸렸고 간성 혼수 상태에 빠지기 직전까지 가서 저를 입원시켰습니다. 점점 상태가 나빠져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몸통을 앞으로 하고 무릎을 접을 수가 없어서 다리를 끌며 걸었습니다. 등에 심한 통증이 있었고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말하는 게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매우 자주 목이 막혔습니다.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똑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어깨라고. 계속해서 저를 한 의사에서 다른 의사로 트랜스퍼했는데 아무도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외상 전문가로 시작해서 통증 클리닉, 신경외과, 내과… 아무도 제 문제가 뭔지 모른 채로 시간이 흘렀고 저는 하루하루 나빠져 갔습니다. 거리로 나갈 수 없었고 저는 잠만 자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욱이 병원 진료를 볼 때마다 더 악화됐는데 왜냐하면 아무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심지어 저를 미친 사람처럼 굴욕적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 응급실에 갔고 내과에 입원했습니다. 거기서 추간판 탈출증과 흉추 부위에 척수공동증을 발견했고 병원에서는 추간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 의료진들은 디스크만 생각하고 척수공동증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에 퇴원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외상 전문가는 이미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제 진료에 지쳐있었습니다. 제 상태를 보며 저를 신경외과 과장에게 트랜스퍼 했습니다. 그 신경외과 의사는 진료를 보자마자 척수공동증을 동반한 기계적 척수병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Valladolid에는 저를 위한 치료법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무려 4년이 지난 후에 말입니다!!! Burgos에 저를 트랜스퍼했고 거기서도 맞는 치료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몇 번이나 요청한 끝에 바르셀로나의 Valle Hebron 병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상태가 계속해서 나빠져서 빛, 소리, 사람들에 불편함을 느꼈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저를 안아주는 것조차 못하게 했습니다. 모든 곳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Valle Hebron에서 전화를 주지 않아서 그 병원에서 일하면서 개인 진료도 보는 한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냈습니다. 그 의사에게 전화했고 그녀는 제 증상들을 보니 그쪽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아주 친절하게 키아리 연구소 전화번호를 줬습니다. 전화번호를 받고 바로 전화했습니다. Bárbara씨가 친절하게 전화 상담을 해줬고 먼저 가지고 있던 모든 검사 영상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날 아침 MRI와 다른 영상 자료를 다 보냈고 4일 후 그들이 저를 도와줄 수 있도록 진료를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 주 진료를 보러 갔고 그 다음 날인 2012년 6월 5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바로 후 몸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똑바로 서서 다리를 끌지 않으며 무릎을 굽히면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통증이 사라져갔습니다. 일주일 전, 검진을 갔을 때 의사는 제 상태가 많이 회복됐고 재활훈련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에 재활치료를 시작합니다. 이제 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거리로 나가도 지치지 않습니다. 전에는 네 발자국도 떼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우 행복하며 제게 삶을 되돌려주시고 두 번째 기회를 주신 Royo의사와 그 연구소 팀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식물인간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정말 놀랍게도 저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번호: +34 983401373 이메일: [email protected]

어느 환자분의 남편인 Giovanni Lanzoni씨가 Dr. Royo에게 보내는 서신

Publicado por ICSEB el 18 11월, 2011
의사 Miguel Royo Salvador께

저는 간단하게 당신을 Miguel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전 세계에서 귀하를 알게 된 몇 안 되는 운 좋은 사람으로서 제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이 짧은 편지를 씁니다. 이 짧은 문장들이 신경-두개골-척추 신경외과 분야의 귀하의 과학자적 자질뿐만 아니라(말할 필요도 없이, 제가 제 분야와 완전히 다른 분야인 의학 용어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도 몰랐을 것입니다.) 귀하의 인도적인 장점과 재능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11월 12일 토요일 트리에스테 “Circolo Sottufficiali”에서 열린 “Associazione Italiana Sindrome Arnold Chiari, Siringomielia, Scoliosi Fium Tomizzati” 주관 행사에 운이 좋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5월 귀하가 종사 절단 수술을 집도한 환자인 제 부인(Rita de Rovigo)과 제 딸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시다시피, 제 부인은 심한 성인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고 몇 년 전부터 오른팔에 지속되는 강한 통증과 혈액의 산소화 결핍을 동반한 심한 호흡 기능부전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런데 친애하는 Miguel, 귀하의 수술 뒤 팔의 심한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호흡 문제는 눈에 띄게 완화됐습니다. 또한, 수술 후 기복이 있었던 기간이 지난 현재, 혈액 산소화 수치(동맥혈 가스)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서 말했듯, 제가 이 편지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전 세계적 수준의 신경외과 및 신경과 의사로서의 귀하의 막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귀하의 인간적인 자질과 재능입니다. 행사 끝에 있었던 점심식사 후,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동한 바에서 귀하를 만났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커피를 마시며 제 부인 Rita의 사례에 대해 더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제 질문에 대해 귀하는 제 부인이 운이 좋았다고 말씀했습니다. 글쎄요, 친애하는 Miguel, 잘못 아셨습니다.: 행운은 신앙과 같아서 직접 찾아야 합니다. 저희는 이 행운을 찾으려고 노력했고(정보기관과 인터넷 등을 통해서) 귀하에게서 그 행운을 찾았습니다. 친애하는 Miguel 감사드립니다. 이 경험담이 작게나마 귀하의 뛰어난 의료진과 협력자 그리고 귀하의 업적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귀하를 아직 알지 못하는 척수공동증과 아놀드 키아리 제1형 환자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이 후기를 읽길 바랍니다. 특히, 귀하에게 상담하기 몇 년 전 문의했던 로비고의 “Civile” 병원 신경외과 의사들과 기적 같은 결과에 대해 매우 놀라워했던 호흡기병학 전문의, 통증 관리 전문가들이 서신을 읽길 바랍니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제 부인이 겪었던 팔의 심한 통증의 원인이 척수공동증일 수 있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제외했습니다. 친애하는 Miguel, 귀하와 귀하의 의료진 및 협력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수술 1년 후 재진인 2012년 5월에 제 부인과 바르셀로나에 동행할 때 다시 같이 커피를 마실 수 있길 바라면서 편지를 끝냅니다. 2011년 11월 14일 로비고, Gianni Lanzoni.

Elvina Evseeva. 척수 견인 증후군, 특발성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7 2월, 2011

elvina_evseeva

수술 날짜: 2010년 1월

rusia

제 건강 문제는 7년 전인 2003년 11월에 시작됐습니다. 제왕 절개 수술 후 하루 만에 17kg이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다시 날씬해질 수 있어서 좋았지만, 걸을 때 몸이 자주 오른쪽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취 부작용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일시적일 것이며 점점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찮은 것”에 관심 둘 시간이 없었습니다. 피로를 많이 느끼기 시작했는데, 어린아이가 있는 모든 엄마에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피로감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누워 쉴 때 매트리스 위에 제가 있는 게 아니라 무거운 매트리스가 제 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몸이 무거웠고 납작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눈에 계속 움직이는 색 진동이 나타났습니다. 매일매일, 가끔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타났습니다. 이 순간은 15분~17분간 지속됐습니다.(재봤습니다.) 이 증상이 나타나면 거의 볼 수 없었기에, 앉아서 이 순간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안과 의사는 아무런 이상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년이 약간 더 지나, 네 번째 발가락에 일종의 저림을 느꼈습니다. 발가락을 비비거나 마사지를 해봤는데도 이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발가락부터 무릎까지 그리고 더 위까지, 다리 전면으로 퍼졌습니다. 감각 인지는 문제없었는데, 느낌이 올이 촘촘한 천을 걸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발가락 피부가 말 그대로 말라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크림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양다리가 얇아졌고 회색빛이 됐으며 항상 차가웠습니다. 그다음 정말 고통스러운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지나 뼈 안의 작열감도 추가됐습니다. 이상한 떨림을 동반한 심한 현기증도 생겼습니다. 걸을 때 이미 오른 다리를 제어할 수 없었고 정상적으로 걷질 못했습니다. 집에서 벽을 붙잡고 걸었습니다. 양다리가 기둥처럼 무거웠습니다.

신경과 진료의 수확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을 기억해내는 게 매우 불쾌합니다. 그 의사는 제 말을 들었고 몸의 굴근 작용을 살펴보고 손가락으로 코를 만지고 저를 찔러보고 다양한 날카로운 물체로 긁어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몇 살인지, 아들은 몇 살인지 물어보고선 “유용한 조언”을 해줬습니다.:”모든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관심을 적게 두고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충격에 빠져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복도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더 경험이 많은(경험이 많아 보이는) 다른 신경과를 갔습니다. 이 의사는 제 모든 증상을 듣고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임상 기록지에 “EM”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Milamma를 처방해준 게 다였습니다. 그 뒤에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약해졌고 거의 매일 아침마다 구역질 감이 있었습니다.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이제 제가 제 건강을 컨트롤해야 했습니다. 제 도시의 Samara 진단 센터로 향했습니다. 모든 검사 영상을 보고도 전문의들은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검사 결과가 다 괜찮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자기 공명 영상 요청서를 써달라고 하니,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본인이 우리 의사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종류의 검사가 필요한지 우리가 더 잘 압니다.” 각각의 검사 비용을 내야 했고 비싸기도 했습니다. 더 나중에 오른쪽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을 알아챘습니다. 양쪽 눈으로는 괜찮게 보였기 때문에 이게 바로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오른쪽으로 누웠을 때 오른쪽 귀를 변압기 상자에 대고 있는 것처럼 귀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습니다. 이 때문에 잠이 달아났고 잘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누워있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등, 목, 팔, 다리가 아팠고 가끔은 숨 쉬는 게 힘들었습니다. 부엌에서 두 세 개 정도의 식기를 설거지하고 힘을 다 써서 양팔과 어깨를 올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자주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말을 안 들어서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제 어린 아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왜 넘어졌어요?” 아들을 제 옆 바닥에 앉히고, 웃으며 엄마가 암소처럼 동작이 굼떠서 넘어지는 거야라고 말해줬습니다. “동작이 굼뜨다”와 “암소” 이 단어들을 재미있어했습니다. 아이는 웃고는 놀이를 하러 가곤 했습니다. 그 뒤 어찌어찌 일어났습니다. 소파로 가서 거기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들에게 제 상태를 숨기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나빠져 갔습니다. 몸에서 상해가는 고기 냄새를 떠올리게 하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너무 많이 빠져서 머리 빗기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그 후 삼키는 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자주 목이 막혀서 가족들과 같이 앉아 밥을 먹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먹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습니다. 음식을 씹고 삼키면서도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습니다. 음식이 목구멍에 도착하고 나서 멈췄고, 저는 목구멍 근육이 작동하길, 음식을 넘기길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 기침을 심하게 해서 음식이 나오게 해서 기도를 비워야 했습니다. 그때 당시, 오른쪽 콩팥이 8cm 정도 내려갔습니다. 항상 당김이나 가끔은 경련이 느껴졌습니다. 요추 부근, 등 전체, 어깨가 계속해서 아팠습니다. 온몸이 뻐근했고 최고로 힘을 줬을 때, 오른발을 겨우 3~4cm 정도만 들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2초 이상은 버티지 못했습니다. 계단을 올라야 했을 경우, 손으로 바지를 들어 오른 다리를 올렸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다리가 꼬여있는지 같이 모아져있는지 뻗어있는지 등을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6년 반 동안 제가 본 어떤 의사도 제 임상 사례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2009년 여름 Kuvatova 클리닉에 갔습니다. 사전 가이드라인 없이 제 요청으로 하루 뒤 MRI를 찍었습니다. 몸 아랫부분에서 모든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요추 부분부터 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위쪽으로 촬영했습니다. 척추 한 부분만 찍은 걸로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척수공동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치료법이 없고 삶의 질이 나빠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운을 잃지 말고 견디라”고 했습니다. 제 남편은 반 년간을 인터넷에서 “살았”습니다. 계속해서 정보를 찾고 또 찾았고 결국 필요한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처음에는 이 바르셀로나 키아리 클리닉을 저희가 찾아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모든 수술받은 사람의 후기와 편지를 읽었습니다. 이미 이 수술이 끔찍한 병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는 것을 완벽히 확신했습니다. 2010년 1월 26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아주 잘 끝났습니다. 마취에서 깬 직후 가뿐하게 일어났습니다. 제 몸이 완벽하게 건강하고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증상 대부분이 즉시 사라졌습니다. 그때의 에너지는 설명할 수 없는 정도였고 단순히 그걸 믿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오른쪽 눈의 시력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회복했습니다. 귀에 윙윙거리던 소리도 수술 바로 후 사라졌습니다. 수술 후부터 한 번도 현기증이 생긴 적이 없었습니다. 색 진동도 없어졌습니다. 일어나서 바로 걸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양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양다리에 많은 힘이 생겼습니다.(근육이 위축됐음에도) 피부 색 또한 즉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머리가 빠지지 않았습니다.(퇴원 날 바로 느꼈습니다.) 등과 요추 부위는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저 자신조차도 이 변화를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수술 전에는 걸을 때 3, 4분간 멈춰서 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 바로 뒤에는 남편과 함께 바르셀로나를 약 10시간 반 동안, 군것질하기 위해 2번 카페를 간 것을 제외하고, 산책할 수 있었습니다.

맞춰보십시오. 저희 중 누가 한 번도 목이 막히지 않고 서서 밥을 먹었을까요? 일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 후기를 쓰는데, 이는 2003년에서 2009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생각하는 게 시간이 지난 지금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끔찍한 진단을 받은 모든 분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의심 가는 치료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Royo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십시오. 클리닉의 의료진께 저의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제게 건강과 완전한 삶을 되돌려주셨습니다.

제 전화번호는: (+7846)3345826 이메일: [email protected] 스카이프: rusianen

Rosanna Biagiotti.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척수공동증 및 T8-T9, T9-T10 추간판 질환

Publicado por ICSEB el 1 5월,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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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10년 5월

italia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Perusa 지방 Umbría에 사는 35세 Rosanna Biagiotti입니다. 저처럼 희소병을 앓게 됐지만, 자국에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모든 분께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간단하게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모든 것은 2009년 8월 시작됐습니다. 목 근육의 위약감, 왼쪽으로 머리를 돌릴 때 있었던 무의식적 움직임, 피로감 같은 이상한 증상들이 첫 증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두개골이나 경추 X선 검사 같은 주치의 요청서로 찍을 수 있는 일반 검사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네에 있는 신경과 진료를 받았는데 그 의사는 진료를 보자마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더 차분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완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답변에 실망한 저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신경과에 연락했고, 의사는 처음에는 회의를 보이다가 결국엔 MRI 검사를 처방했습니다.

첫 증상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난 11월이 됐고, 간단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많이 악화됐습니다. 그 당시 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2009년 11월 10일로 예정돼있었던 MRI 예약을 절망적으로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받은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척추증을 동반한 C5-C6 퇴행성 추간판 질환. 경-흉수 연결부와 흉수부 중심관의 몇 mm 확장. 새 MRI를 다시 찍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며칠 뒤인 2009년 12월 9일, 다시 검사를 했고, 그 결과는 이전 진단과 같았습니다. 몇 주 후, 알고 지냈던 신경외과 의사의 사립 센터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다음과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C7-T1 척수 공동(첫 MRI 영상에서보다 더 증가한 모습이었습니다.), 연축성 사경 또는 경추 근육긴장이상. 그는 신경 혈관 문제를 제외하기 위해 새 MRI 촬영을 제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눈에 띄게 악화됐고 가끔 손가락에 감각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신체 온도 관련 문제, 목 넘김 문제도 생겼습니다. 근육 긴장 이상 경련 완화를 위한 보툴리눔 독소 치료를 위해 제 담당 신경과 의사는 Perusa 병원의 한 신경과 의사와 연락했습니다.

진료를 보러 갔을 때는 벌써 1월 말이었습니다. 더 많은 검사를 위해 이 의사는 저를 입원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검사들이나 진료는 제게 겉치레처럼 느껴졌고 인간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MRI를 다시 찍었고 퇴원과 함께 다음과 같은 진단을 했습니다.: 경-흉수 척수공동증 경추 국소성 이긴장증 빈혈 잦은 편두통 퇴원 당일, 경추 근육긴장이상을 위한 보툴리눔 독소 치료를 받았고, 며칠 뒤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척수공동증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갔지만 사경증에 어떤 효과도 보지 못했고 그 반대로 점차 할 수 있는 게 적어졌습니다. 석 달이 지나고, 공병원을 통해서는 4개월이 걸릴 것이었기 때문에 보툴리눔 독소 치료를 앞당겨 받을 수 있는지 Perusa 병원의 XXX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 상태를 걱정하지도 않고 아주 무례하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2010년 6월 16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로선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척수공동증에 관해서 뭘 해야 할 지 몰라, Siena의 유명한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MRI CD를 짧게 훑어본 뒤, 그는 지금의 이 척수 공동이 더이상 커지지 않을 수 있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진단서를 받지도 못하고 10분간의 진료를 끝내고 나왔습니다. Perusa 병원과 같은 불친절함에 슬펐습니다.

모든 것에 실망했지만, 저는 안심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척수공동증은 멈추지 않는 퇴행성 질병으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병 관련 지침을 받은 게 아무것도 없었던 저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를 불확실한 상황으로 내몰았지만, 저는 어떤 것이든 확실하게 해놓고 싶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제가 살던 방식과 달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딸과 놀지도 못했고 작은 움직임들은 넘어야 할 큰 산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도와줘야 했습니다. 절망하며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말로 제 삶이 불행해질지, 아니면 해결책이 있을지 알고 싶었습니다. 출구도 없는 어둠 속에 살다가 하루는 인터넷에서 제 병에 특화된 클리닉을 찾다가 바르셀로나 Royo 의사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를 발견했습니다. 정말 해결책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진료 날짜를 정하고 바르셀로나에 2010년 5월 19일 방문했습니다. 많이 불안했지만 동시에 드디어 제 질문에 답해 줄 준비된 의사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행복했습니다. 주의 깊게 저를 진찰하고 MRI를 확인한 뒤, 다음과 같은 진단이 나왔습니다.: 경추 근육 긴장 이상 특발성 척수공동증 척수 견인 증후군 또한, 제 경우는 매우 복잡한 사례라고 명확히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이 더욱 퇴행하지 않도록 병을 멈추기 위해 종사 절단 수술을 즉시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 6월 1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CIMA 병원에서 Royo 의사가 집도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당일, 솔직히 말해 저는 매우 침착했습니다. 전신 마취로 진행된 수술은 1시간이 약간 넘게 걸렸고 깨어났을 때,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몇 년 동안 저를 누르고 있던 무거운 느낌이 가벼워진 것 같았고 수술 8시간 후에는 이미 다양한 것이 회복돼 있었습니다.: 손의 감각 이상이 사라짐, 몸 온도 감각 회복, 목젖의 위치가 중앙으로 다시 돌아옴, 바빈스키 반사 또한 회복. 경추 근육 긴장 이상은 계속 남아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호전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약 한 달 뒤, 고개가 정상 위치로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근연축 또한 사라졌고 저는 이전과 같은 정상인이 됐습니다. Royo 의사의 연구 덕분에 제 삶을 다시 찾았습니다. 제게 특별한 분인 이 의사에게 평생 감사할 것입니다. 연구소 팀원들과 Gioia Luè씨에게도 책임감과 그 직업의식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시 제 삶에, 그리고 제 가족에게 웃음을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제 딸과 놀고 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어두웠던 시기에 병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그리고 연구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던 힘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병이 여러분의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줄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Royo 의사께 와서 병을 멈추십시오. 이야기가 길어졌다면, 죄송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전화번호: (+39) 3534043904

Cristina Pascale. 견인 척수병증, 흉추 및 요추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3 4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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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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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 사는 30세 Cristina Pascale입니다. 저는 Royo 의사 환자이며 “견인 척수병증, 흉추 및 요추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았습니다.

제 증후는 2008년 4월 나타났습니다. 왼발 통증이 있었는데 항염증제 효과가 있을 때만 진정되는 통증이었습니다.

2008년 6월에서 2009년 3월 사이,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양 다리가 많이 아팠고 걷기 힘들었습니다. 지속적인 통증은 아니었기에 며칠은 아주 느리게 걸어야 했지만 또 어떤 날은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요추에 통증도 있었습니다.

그후 인터넷에서 제 “문제”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연구소와 연락해 2008년 9월에 찍은 MRI 영상을 보냈습니다. Royo 의사가 제 자료를 검토했고 흉추 및 요추에 척수공동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2009년 3월, 당시 있었던 몇 가지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고, 저는 진료와 종사 절단 수술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향했습니다. Royo 의사의 진료 후, 이게 제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루 뒤 Royo 의사가 집도하는 수술을 받았고 수술 몇 시간 후 감각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검진을 위해 다시 Royo 의사의 진료를 보러 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호전을 느끼고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통증들이 사라졌고 현재 저는 병이 없는 정상인 같고 100%로 회복한 것 같습니다. Royo 의사와 그 팀에 축하 인사를 드리고 싶고, 저를 지지해주셔서 모든 순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척수공동증”을 앓고 있는 분이 있다면, Royo 의사 진료를 보러 가십시오. 그의 수술이 유일하고 진짜인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Cristina Pascale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제게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전화번호: 0040723322327  이메일: [email protected]

Reinaldo Andrés Yegres Ruiz. 특발성 척추측만증 및 흉수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3 9월,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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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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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환자 Reinaldo Andrés Yegres Ruiz의 아빠(Reinaldo Yegres López), 엄마(Carmen Ruiz de Yegres)인 저희는 아들의 병을 알고 나서부터 저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여러분께 이야기 해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아들이 2006년 7월 배꼽 탈장 수술을 할 때 나타났습니다. 보험 회사에서 보증서를 위해 복부 초음파 검사를 요구해서 촬영하니, 왼쪽 골반과 좌측 콩팥이 정상보다 더 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문의들은 이를 보고 방광도 커지고 있다는 것(신경인성 방광)을 발견했으며, 이와 더불어 아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위장 문제(변비)도 발견했습니다.

한 아동 신장병 전문 의사가 척추 MRI 촬영을 제안했고, 그 영상에서 흉추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았습니다.(2006년 9월)

그 당시, 저희는 그 병이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한 아동 비뇨기과 전문의가 진단명을 확인하기 위해 재촬영을 처방했는데 그 결과는 같았습니다. 그 시기에는 이미 이 병의 치료법이 없다는 사실과 계속해서 아들의 상태가 나빠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저희에게 정말 심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게 보였던 아들이 이런 병을 앓다니.. 베네수엘라에서 다양한 전문의들의 진료를 봤는데, 한 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최선의 방법은 척수에 카데터를 배치하는 것이랬고, 다른 한 명은 두개골 쪽에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하지만 그도 경과에 대한 장담은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저희는 무능하게 느꼈습니다. 신께 계시를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목소리를 들어주셨습니다. 아들의 삼촌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어떤 의사(Miguel Royo 의사)가 자신의 의료진들과 함께 이 병에 관해 몇 년간 연구하고 있는 연구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연구소의 Isabel Montesinos씨와 연락을 취했고, 연구소에서 요청한 모든 자료를 보냈습니다. Royo 의사와 그 의료팀이 영상 평가를 했고, 척수공동증 뿐만 아니라 특발성 척추측만증까지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수술에 적합한 사례이며 위험은 적다고 했습니다. 이 의견 이외에, 미국에 있는 센터와도 연락했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바르셀로나로 아이를 데려가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충분한 자금이 없었지만, 저희는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아이의 병을 알게 된 지 1년 후인 2007년 9월, 아이를 Royo 의사의 진료로 데려갔습니다. 진료에서 의사는 검사를 진행했고 저희는 아들의 오른손의 악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많이 놀랐던 점은 아이가 11살임에도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만 있는 바빈스키 반사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병이 척수에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인 2007년 9월 13일, Royo의사와 그의 의료팀의 집도하에 아들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날인 퇴원 당일, 다시 한 번 검사를 했는데 바빈스키 반사가 사라져있었습니다. 수술 15일 후, 이미 오른손의 악력이 회복됐고 변비 문제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신께 감사드리고, Miguel Royo 의사께 집요하게 질병 연구를 해주신 점, 그리고 진행을 막기 위해 이 병의 원인을 밝혀주신 점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의사는 저희 아들이 건강한 아이로 계속 커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같은 문제가 있는 다른 사람들 또한 이 해법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후기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위한 후기입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Clara Palau.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 11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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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6년 11월

저는 43세 Clara Palau Verdú입니다. 알리칸테의 San Vicente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첫 임신 기간부터 등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14년 전인데, 찌르는 통증이었습니다. 첫 몇 년간은 약한 통증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정도가 심해졌고 점점 일상생활에 한계가 왔습니다.

다양한 외상 전문의 진료 후, 2003년에 C4-6의 경추 척수공동증, 흉추 윗부분의 척수내수종을 진단받았습니다. 제가 겪었던 고비들을 묘사하자면, 흉추와 경추 부분이 심하게 아프고 감각 이상도 함께 오며, 오른팔 감각이 둔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상적으로 오른팔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상 생활이 힘들었고 집안일 대부분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닦기, 쓸기, 청소, 서랍 여닫기, 옷장에 옷 걸기, 오른쪽으로 드라이기 쓰는 것 등..

척수공동증의 낭종이 제 척수를 계속해서 압박할 것임을 알았지만 저는 몇 개월 동안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해 의사가 처방해준 지시를 따랐습니다. 공보험 신경과 담당의사의 말에 따르면 제 유일한 방법은 장기간 약 복용을 하며 외과 수술을 통해 낭종을 빼내는 수술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를 장담하지 않는 수술이었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는 수술이었습니다. 제 문제들이 점점 지속되고 강도가 강해지는 것을 보며 Royo 의사가 집도한 새로운 기술을 통한 수술을 받은 환자인 Jesús Sánchez씨와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 수술은 전혀 몸에 부담이 가지 않으며 좋은 결과가 있는 수술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바르셀로나 신경 연구소에 연락했습니다. 초진을 받고 2006년 11월 28일 Royo 의사의 종사 절단 외과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지 두 달이 지났고, 상당한 호전을 느끼고 있습니다. 몇 번의 위기만 있었고 강도는 수술 전보다 덜 했습니다. 이젠 집안일도 할 수 있고 팔 감각이 둔한 느낌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오른팔에 힘이 더 생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운동도 하기 시작했고 매일 더 괜찮아집니다. 때문에 척수공동증을 앓는 분이나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께 응원의 에너지를 보내며, Royo 의사와 연락하시길, 종사 절단 수술에 대해 생각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 수술은 위험이 거의 없는 간단한 수술이고 많은 장점이 있는 수술입니다. 전화 번호: (+34) 965 669 813 이메일 주소: [email protected]

Jesus Sanchez. 척추측만증 및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25 5월, 2006

수술 날짜: 2006년 4월

저는 20대 때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은 42세 Jesús라고 합니다. 14살 때부터 이미 척추측만증이 있었지만, 의사들은 단단한 침대 매트리스와 운동으로 교정될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20대 때, 하루는 면도하고 있었는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응급실로 갔고, 신경과 진료에서 의사가 제게 항상 이런 식으로 걸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선 제가 경련성 보행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 많은 검사를 시켰고, 척수에 공동이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진행성 병이었습니다. 불균형과 위약감을 느꼈고 발을 헛디뎠으며 오른쪽 몸 절반의 감각도 떨어졌습니다. 1985년 마드리드의 Ramon y Cajal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경추 뼈를 쪼개는 종래의 수술법이었습니다. 수술 후 과정은 끔찍했습니다. 회복했을 때는 이미 걷기 위해서 목발을 짚어야 했습니다. 몇 년 뒤, 병세가 악화되어 다시 같은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휠체어 신세가 됐습니다. 2006년에 인터넷으로 바르셀로나 신경 연구소를 발견했습니다. Royo 의사와 연락해서 5월 25일 종사 기술법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몸에 무리가 거의 가지 않고 효과적인 수술이었습니다. 조금만 힘을 줘도 호흠에 문제가 있었는데 수술 후에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척수공동증을 진단 받았을 때, 이 간단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면, 휠체어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덜 공격적이나 매우 효과적인 이 수술을 첫 번째 옵션으로 선택하실 수 있게 이 수술법을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Royo 의사가 이룬 이 업적에 감사드리고 이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척수공동증을 앓고 있는 환자분들, 바르셀로나 신경 연구소에 연락하십시오. 저와 연락하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메일로 연락주십시오.: [email protected]

Generoso Rodriguez Ramallall. 척수공동증 및 평평두개저

Publicado por ICSEB el 20 4월,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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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4년 4월

저는 이 자리에서 Royo 의사께 제 수술을 담당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2004년 4월 20일 수술을 받았고 그 경과에 매우 만족합니다. 72세가 됐을 때, 오른손 감각이 없어서 오른손으로는 물건 하나도 잡지 못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인 현재(74세) 움직임과 감각의 근 80%를 회복했습니다. Royo 의사 진료를 받을까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저처럼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Generoso Rodriguez Ramallall 이메일: [email protected]

바르셀로나 신경 연구소(INB)의 설명

Generoso Rodriguez Ramallall 환자는 우 상지로 퍼지는 경추통, 오른손 촉각 및 온도 감각 저하 형태의 감각 인지 장애로 바르셀로나 종합 병원의 신경외과 진료를 봤습니다. 한 손으로 물체를 인지하지 못했고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으며 촉각도 정상보다 덜 느꼈습니다. 거기서 척수공동증과 두개저 함입증을 진단받았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치아 돌기 제거 수술을 제안했습니다. 이 치아 돌기는 제2경추에 속해있는데 목 움직임을 제어하는 부분입니다. 머리를 받치기 위해 두개골 견인 할로 베스트를 장착하고, 1년 뒤 경추 제1번, 제2번을 고정하는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환자는 18년 전 오른쪽 몸에 편측 부전 마비가 왔었고 이는 Royo 의사가 집도한 경추 추간판 탈출을 제거한 다음 날 회복됐다고 말합니다. 같은 의사의 진료에서 본인 병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새로운 해결책인 종사 절단 외과 수술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삼십분 정도가 걸린 수술 5시간 뒤, 병원 복도에서 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다가 물체를 보지 않고도 그게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오른손 감각 이상이 회복된 모습이었습니다. 수술 1년 뒤, 바르셀로나 라디오 Cero 채널의 Ricardo Aparicio 프로그램에서 Generoso Rodríguez씨, 그의 부인, Royo 의사를 인터뷰했습니다. Rodríguez Ramallall씨 부인의 질문 “왜 공보험에서 이 수술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으로 인해 2개의 Royo 의사 인터뷰가 준비돼 있었음에도, 방송은 중단됐습니다.

Barbara Martinez. 척추측만증 및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6 6월,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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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1994년 6월

모든 것은 13살 때 봤던 마지막 소아과 진료에서 시작됐습니다.(현재 32세입니다.) 소아과 의사는 제게서 현저한 척추 만곡을 봤습니다.

그렇게 X선 검사를 했고 눈에 띄는 척추측만증을 발견했습니다. 척추측만증을 앓는 여느 환자와 다르지 않게 재활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척추가 곧아지게 하려고 운동을 거의 매일 했고 척추가 휜 부분에 압박을 가하는 철로 된 새장 같은 물건도 사용했습니다. 다행이었던 점은 재활치료 시작 6개월 후 상당한 호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똑같은 재활 치료, 수영 등 모든 것을 해도 성장과 함께 다시 척추측만증이 생겼고 그 곡률이 더 높아진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적어도 3년간 나아졌다가 나빠졌다 하며 안정된 상태가 되지 못하고 더 진행됐습니다.

그러다가 Royo 의사 의료팀을 알게 됐습니다. 이 의사는 제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줬고, 척수공동증의 치료법 또한 말해줬습니다. 이 변화들의 원인이 척수가 팽팽해진 것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활 치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면서 척수가 더 팽팽해져서 척추측만증이 더 심해진 것이었습니다.

그 척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수술을 결정했을 때가 바로 1992년, 제가 18살이었을 때였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실험용 쥐가 되는 것이었고 Royo 의사 이론의 3번째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제3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다양한 의사와 진료를 받고선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부분이 척수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종사를 자르는 것, 이 수술 자체에는 큰 위험이 없다고 했고 이 수술의 대안으로는 척수에 철심을 박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수술은 잘 끝났고, 훨씬 자유로워지고 몸이 펴진 것 같으며, 등의 통증 없이 더 편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Bárbara Martínezz 이메일: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