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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

후두하 두개골 절제술 후 SFT

Nieves Wang, 척수 견인 증후군.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다발성 경추 추간판 질환.

Publicado por ICSEB el 4 9월, 2017
2011 6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러분과 2010년에 제가 쓴 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절 치료해 줄 의사를 찾기 위한 힘들었던 여정에 대한 글입니다. 그땐 스페인 방법이 진짜인지 아닌지 몰랐기에 진짜 정보를 위해 인터넷에 제 이야기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에서 수술받은 세번째 중국인 환자입니다. 저보다 먼저 수술받은 중국 환자 중 한 명이 제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Wang 저는 당신의 이야기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이야기가 도시 전설이 아니라는 Wang씨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바르셀로나에서 귀국했고, 수술 효과가 있습니다!
그녀는 제게 어떻게 ICSEB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옳지 않은 길을 택하지 않도록 제 경험을 공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스페인의 치료법은 가장 정확하고, 그들은 이 치료법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20년 전에 종사 절단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면, 정말로 고통스러웠던 그 모든 경험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입니다.
현재 저는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계속 걷는 데 어려움이 있고 가끔 구토를 동반한 기침을 하지만 전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병이 멈췄다는 것이고, 이게 바로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아주 예쁜 도시입니다. SFT 수술 후 첫 며칠은 수술 부위가 아파서 호텔에서 쉬었지만 셋째 날부터 남편과 함께 해산물도 먹고 관광 및 쇼핑 등을 했습니다.
제 이메일입니다.: [email protected]

—–2010년에 인터넷에 올렸던 제 경험담입니다.—–

“고행의 길”
저는 49살 Nieves Wang입니다. 대부분처럼, 저도 근사한 남편, 딸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그 이유로 매일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20년도 전에, 걸을 때 잘 제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가끔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땐 일, 가정, 딸 때문에 너무 바빴기 때문에 이 작은 문제들에 큰 중요성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균형을 잡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하이힐을 신는 것도 그만둬야 했고 제 딸을 돌보는 것도 멈췄습니다. 1991년, 정확히는 제 남편과 함께 저희는 저를 도와줄 의사를 찾는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진료를 본 의사들은 각각 다른 것을 말했습니다. 몇 명은 류머티즘 또는 뇌 위축증이 있다고 말했으나 다른 몇 명은 뇌 혈관 문제라고 했습니다. 서양 의학이나 동양 의학 할 것 없이 수많은 의사 진료를 봤습니다. 침도 맞아봤고 전기 치료, 심지어 무당에게도 갔습니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고 제 증상은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중, 의사 한 명이 제게 약물 치료는 효과가 없고 외과 수술이 필요한 희소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수술은 많은 위험성이 있고 병이 중지되지 않을 수도 있는 수술이었습니다. 이 이유로, 보존적 치료를 제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2000년도가 됐습니다. 이때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증상이 있었습니다.: 보행 불균형, 불안정적인 선 자세, 구토 및 기침, 두통, 불면증 등. 같은 해 10월 19일 마지못해 후두하 두개골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 고통은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수술은 5시간이 걸렸고 머리를 14바늘 꿰맸습니다. 수술 후 한 달 동안 열이 났습니다. 남편과 제 여동생은 서로 교대하며 병원에서 저를 돌봤습니다. 36일 동안 남편은 제 침대 옆에서 앉아서 잤습니다. 저는 많이 감동했고 고마웠으나, 초췌하고 걱정스러운 그 얼굴을 보고 있자면 눈에 눈물만 찼습니다.
수술 후 몇 가지 호전이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병이 더 악화됐습니다. 제가 집에서 나올 때면 사람들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부터 술에 취했습니까? 그렇게 술을 마시다간 혈전증이 생길 것입니다..” 보이십니까? 저는 이런 말들, 그들의 비웃는 눈초리를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잘 걸어 다니는 건강한 사람들에 질투가 났고 쇼핑몰에 보이는 예쁜 하이힐을 신는 꿈을 꿨습니다.
2006년, 대학 때문에 떠나는 딸을 배웅한 뒤, 남편은 저를 따라 다시 북경의 “전문가”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 의사는 저를 보자 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수술을 받았으면서 위해 오신겁니까? 병은 불치병입니다.” 그렇게 차가운 말들로 진료가 끝났습니다. 너무 상처받아서 저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래, 맞아. 다른 수술을 받지 않을 거야. 다른 두개골 절제술을 받느니 죽는 게 나아!” 그 당시, 보행 제어가 잘 안 됐고, 서 있을 때 자세가 불안했으며, 심한 기침과 구토, 연하 장애, 불면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백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제 병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진보된 의학을 발견하는 기적을 빌었습니다. 병이 진행이 배뇨 장애, 마비일 것임을 알았습니다.(심지어 통증 때문에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게 내 미래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2010년 검진으로 찍은 MRI 판독지에 편도가 3.0mm 내려와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연히, 이 병에 특화된 연구소를 발견했습니다. 제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는 45분밖에 안 걸리는 최소 침습 기술을 통한 수술을 제안했습니다. 아프지 않고 수술 다음 날 퇴원시켜줬습니다. 이 새 소식에 저는 며칠 동안 감격해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설이나 꿈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행의 길이 아닌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희망합니다.
Nieves Wang 2010년 5월 10일

Leonardo Coutinho, 소뇌 편도 하강을 동반한 신경 두개골 척추 증후군

Publicado por ICSEB el 26 5월, 2017

수술 날짜: 2015년 7월

제 아들의 증상은 3살 경부터 시작됐습니다. 다양한 소아과 및 신경과 진료를 봤고 거기서 두개골과 뇌 자기 공명 영상을 찍었습니다. 특별한 진단명은 없었고 그냥 아이를 편두통과 천식 환자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변함없이 장난도 치고 달려 다녔는데, 목덜미가 아프다 불평했고 숨쉬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증상은 더 심해지고 빈번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5살 때, 사촌들과 “술래잡기”를 하다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파티 중이었는데, 흡입기를 찾기 위해 저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선 아이는 기절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제 아들을 잃는 줄 알았습니다. 그 무언가가 제게 문제는 천식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천식 환자기 때문에 천식을 앓는다는 것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편두통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새로운 MRI 영상 촬영을 신청했고 영상을 본 뒤, 신경과에서는 신속하게 신경외과 진료를 보라고 말해줬습니다. 다음 날의 신경외과 진료에서 의사는 최대한 빨리 두개골 절제술을 받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 당시, 제 아들은 웃는 것조차 하질 못했습니다. 웃으려고 힘을 주면 호흡 곤란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로 저희는 계속해서 병원에 달려가야 했습니다. 호흡 곤란은 호흡 기능을 담당하는 연수에 압박이 생긴 걸 의미했습니다. 아이의 연수는 소뇌 편도 때문에 많이 압박된 상태였습니다.

아들은 2013년 6월 5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회복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심한 통증이 있었으며 구토를 많이 했습니다. 항상 Tramal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중환자실에 4일간 입원했고 이틀 뒤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약 15일간은 머리를 들지조차 못했습니다. 많이 아파했습니다. 회복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수술 후 첫 9개월 동안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그전과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두통은 매일 나타났으며 구역질과 구토 또한 동반됐습니다.

다시 신경외과 의사를 보러 갔습니다. 그 의사는 다시 저희에게 새로운 수술을 제안했는데 이번에는 더 공격적인 수술이었습니다. 저희는 아이가 그 수술을 받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려되는 심각한 위험성 때문도 있었지만, 경추 부근에 2개의 플레이트를 삽입해서 목덜미 움직임이 40%로 줄어들 수 있는 수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평생 목지지대를 하고 살아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2015년 7월, 저희는 바르셀로나로 갔습니다. 거기서 키아리 뿐만 아니라 척수공동증 초기를 진단받았습니다. 7월 16일 수술을 받았고 그 다음 날 퇴원했습니다. Leonardo는 많이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수술 부위만 아프다고 했습니다. 두통도 없었고 토하지도 않았습니다. 수술 5일 후, 저희는 이미 바르셀로나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항상 지하철로 이동했는데, 아이는 투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Leonardo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장난치고 달리고 축구를 연습합니다. 호흡 곤란 문제는 없습니다. 두통은 아주 드물게 있습니다. 발의 감각도 돌아왔습니다. 비음이 났던 목소리는 더 나아졌고 드물게 등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이전보다 학교에 더 가고 싶어합니다. 이전에는 더 짧은 시간표였는데도 가기 싫어했습니다.(오후 1시에 시작해서 3시에 끝났음)

바르셀로나에서 수술을 받은 후, 통증이 생긴 횟수가 아주 적었다고 여러분께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바르셀로나에 아들을 데려가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 당시 이 수술을 추천하는 다른 어떤 의사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라질 환자들의 수술 후기 덕분에 바르셀로나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수술은 제 아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수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키아리 질병과 척수공동증을 앓는 모든 분께 이 수술을 추천합니다.

긍금한 점이 있으시면, 제게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연락 이메일:

Kazuko Suzuki: 신경 두개골 척추 증후군. 종사 질병. 소뇌 편도 하강, 척수공동증, 척추측만증, 다수의 추간판질환.

Publicado por ICSEB el 19 1월, 2017

수술 날짜: 2016년 3월

저희 Kazuko와 같은 질병을 앓으며 치료법을 위해 외국 의료 센터 진료를 받으려고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 홈페이지까지 다다른 환자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수술 후기를 작성합니다.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에는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희 딸이 11살이었을 때,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그녀의 자세가 나빠졌고 왼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저희는 매일 딸에게 바른 자세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엑스레이나 MRI를 찍어야한다고 생각지 않았고 단지 자세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Kazuko의 첫 증상은 2월, 딸이 13살이었을 때 나타났고 왼 다리가 저렸습니다. 나중에는 왼손 저림, 어지럼증, 두통, 구토 등이 생겼습니다. 동네 종합 병원에서 자기 공명 영상을 촬영했을 때 Kazuko가 앓던 질병을 발견했습니다.

영상 판독지에는 저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진단명이 쓰여있었습니다.: “키아리 기형 제1형”, “척수공동증”. 해당 질병의 심각성을 저흰 이해하지 못했으나 질병에 대해 의사가 설명해줬을 때 매우 진지한 얼굴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일한 치료법은 외과 수술이며 이 수술은 머리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그전까지 저희 딸은 중증 병을 앓은 적도 없었고 건강하게 살아왔었기 때문에 저희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Kazuko도 수술해야 될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 질병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에 대한 모든 정보가 부정적이었습니다. 저희는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 홈페이지의 내용은 매우 달랐으며 저희에게 한 줄기 희망을 줬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종사 절단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희는 망연자실했습니다. 곧바로 바르셀로나 연구소 담당자인 Takahashi씨와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 딸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학교에 못 갈 정도였습니다. 저희는 일본의 두개골 절제술을 하는 한 병원과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 사이에 있었습니다. 저희의 선택은 첫 번째 옵션이었습니다. 저희 딸이 바르셀로나까지 여행할 기분도, 힘도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시 한 번 Takahashi께 연락해서 정말 죄송하지만, 바르셀로나 방문을 단념했다고 알렸습니다. Kazuko의 증상이 훨씬 덜했다면 바르셀로나로 갔었을 것입니다.

병원을 몇 개나 바꾼 뒤, 드디어 2015년 4월 도쿄의 병원에서 두개골 절제술을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경과는 매우 좋았고 저희 딸의 고통스러운 증상들이 완벽히 사라져서 저희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모든 가족이 성공적인 수술을 축하해줬습니다. (척추측만증에 관해서는 두개골 절제술 후 Kazuko는 척추측만증 전문의가 있는 동네 종합 병원을 방문했는데 그 당시 25º의 측만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밤에만 코르셋을 착용합니다.)

수술 3개월이 지난 후 2015년 8월, 검진을 위해 도쿄 병원을 찾았습니다. 두개골 절제술 후 어떤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수도를 관광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MRI를 찍었고 담당의는 1년 안에 카테터를 넣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척수 공동의 크기가 줄어드는 게 보이지 않고 소뇌 편도가 조금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견은 저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의견이었습니다. 저희가 보기에 Kazuko는 완벽히 괜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의사를 신뢰했지만, 카데터 삽입 수술을 받는 건 단념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다시 한 번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마지막엔 바르셀로나로 가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딸의 상태가 바르셀로나로 가는 긴 여행길을 버틸 수 있는 정도였고 무엇보다 진솔함으로 저희가 연구소를 믿을 수 있게 저흴 대해준 Takahashi씨 덕택으로 바르셀로나행을 결정했습니다. 연구소 치료법인 종사 절단 수술의 목적은 “질병의 원인을 제거”를 위함이었고 이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모든 가족을 모아 놓고 바르셀로나행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했고, 본인 앞에 긴 인생이 남아 있는 제 딸의 병을 멈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비록 외국에 있는 의료 센터지만 해당 질병에 전문화된 센터가 존재한다면 저희는 그 외국 치료법을 받으러 갈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게다가 종사 절단 수술은 카데터 삽입 수술보다 덜 침습적인 수술이었기에 저희는 바르셀로나행을 결정했습니다.

2016년 3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탔고 호텔에서 하루 지낸 후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에 갔습니다. 저희 딸의 담당의는 Fiallos 의사였고 Takahashi씨의 번역으로 담당의의 소견을 들었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간단한 검사를 하기 위해 Cima 병원으로 갔습니다. Fiallos 의사나 Takahashi씨가 정성을 다해 응대해줘서 걱정은 전혀 없었고 수술 당일에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딸도 그렇게 느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고 1시간이 덜 걸렸습니다. 제가 Cima병원에서 Kazuko와 같이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호텔방처럼 예쁜 병실에 저희는 정말 놀랐습니다. 퇴원 후 산책하는 것을 권하신다길래 재진 전까지 열흘 동안 할 수 있을 만큼 산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일본에서 출국하기 전에 적어도 하루는 바르셀로나 관광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르셀로나에 체류하는 주목적이 관광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 기간에 저희는 매우 잘 지냈습니다.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 팀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존경을 표하며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Luz Belliard.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소뇌 편도 하강.

Publicado por ICSEB el 5 2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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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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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보스턴에 사는 53세 도미니카 사람인 Luz Belliard라고 합니다. 저는 4년 전(2010년 12월 16일)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에서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으로 수술받았습니다. 수술은 아주 위험한 뇌 수술이었고 7시간이 걸렸습니다.

첫 11개월간은 모든 증상이 사라져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2011년 11월, 악몽은 다시 시작됐습니다.; 두통과 어지러움이 시작됐습니다.

2011년 12월 24일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실신했고 그때부터 수술 전에 있었던 모든 증상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머리 압박감과 심한 통증(전기 통하는 것 같은 느낌); 균형 불안정; 후두부 경직; 어지러움(머리에 압박감이 나타난 후에 정기적으로 나타남); 양 하지 특히 우측 다리 및 상지 통증(양 무릎 부어오름, 힘 빠짐, 가끔 저림감); 심한 등 통증; 목 불편감으로 머리를 뒤로 젖힐 수 없었음. 갑자기 멈추거나 머리를 돌리면 압력이 느껴졌고 몸이 균형을 잃었습니다. 서너 번째 계단에서 바로 머리에 압력이 느껴졌고 실신해서 혼자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었습니다. 호흡을 쉽게 할 수 없었고 자주 숨이 찼습니다. 항상 피곤했고 침대 정리만 해도 지쳤습니다. 저는 원래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항상 뭔갈 했었습니다. 질병 때문에 제 인생 전체가 바뀌었습니다. 항상 추위를 탔기 때문에 저한테는 여름은 겨울과 같았습니다.; 귀가 윙윙거렸으며 빈혈과 만성 변비로 고생했습니다.

201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다양한 신경과 전문의를 방문했고 셀 수도 없는 검사를 했으며 그들은 각기 다른 진단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 수술 집도의를 비롯한 다양한 의사들은 제가 수술 전과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도움 없이, 제 남동생과 올케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의사 Miguel B. Royo Salvador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냈습니다.

2년 전인 2013년 1월 15일, 저는 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에서 의사 Miguel B. Royo Salvador와 그의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았습니다. 바르셀로나에 휠체어를 타고 도착했습니다.; 우측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고 머리 압력이 계속됐으며 통증과 피로 등 병과 관련된 다른 증상들도 있었습니다.

의사 Royo Salvador의 의료진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으며 높은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 신체검사를 했고 건강 상태를 평가했습니다. 수술 당일 입원 수속을 했는데 병실이 마치 5성급 호텔 같았습니다. 의사 Royo가 저를 맞았으며 수술은 4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수술 다음날부터 저는 이미 걷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이틀 입원했습니다. 퇴원 할 때, 바르셀로나에 산책을 제안하셔서 그대로 했습니다. 일주일 후 제가 사는 보스턴 매사추세츠로 귀국했습니다. 한달 째 됐을 때, 저는 완전히 회복했고 증상도 이미 사라졌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일도 풀 타임으로 하고 집안일이나 약간의 운동도 합니다. 다시, 저는 제 삶을 회복했습니다.

이 병을 앓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제 제안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즉시 그들에게 진단을 받으셔서 의사 Royo와 수술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아주 빠른 회복과 통증도 적습니다. 하나님과 의사 Royo 그리고 그의 의료진께 제 건강과 제 삶을 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저를 포기하지 않고 응원해준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제게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Luz Belliard

(617) 899-3886

[email protected]

Emil. 척수 견인 증후군,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특발성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2 4월,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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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  5세

Date of surgery: Nov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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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2008년 11월생)은 2010년 8월 병에 걸렸습니다.: 걷는 걸 멈췄고 완전히 쇠약해져 갔습니다.(이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발달했습니다.) 의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다양한 검사를 했고 척수염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공명 영상에 걱정할만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한 방사선과 의사가 3년 전 “정상”이라고 했던 영상에서 소뇌 편도의 7mm 하강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에밀은 느리게 회복해갔습니다. 두 달 후, 다시 걷기 시작했으나 다리를 절었습니다. 많은 의사를 방문했고 그들은 각기 다른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에밀의 왼쪽 몸에 마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부터 재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3개월 후, MRI를 다시 찍었고 의사들은 소뇌 편도가 11mm 하강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신경외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지시했습니다. 저희는 포즈난에 있는 의사를 방문했고 그는 진료 시작 몇 분 뒤 에밀의 머리 기울기를 근거 삼아 감압술을 지시했습니다. 2011년 3월 포즈난에서 에밀은 “부분” 후두하 두개골 감압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뒤, 다양한 센터와 집에서 개인 재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걸을 때면 많이 넘어졌고 대소변을 제어하지 못했으며 왼손은 항상 주먹을 쥐고 있었습니다. (근전도 검사에서 60% 신경 손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 있을 때 자세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자세였습니다. 2012년 1월, 다시 자기 공명 영상을 찍었을 때, 소뇌 편도가 15mm 하강돼있었고 3개의 척수 공동 마저 볼 수 있었습니다. 2012년 8월(7개월도 안 된 사이에) 이 3개의 척수 공동은 그 지름이 거의 척수 너비만큼 넓어졌고 3개의 공동이 더 나타났습니다. 바르샤바에 있는 한 교수는 2차 두개골 절제 수술을 지시했습니다. 저희 아들의 척수와 뇌에 손상을 일으키는 질병의 진행 빠르기에 저희는 겁을 먹었습니다. 더욱이, 폴란드에서 지시했던 유일한 “치료법” 후, 그전에는 없었던 척수 공동이 나타났고 의사들은 다시 똑같은 수술을 재차 하려고 했습니다. 예정된 감압술 실시 며칠 전, 바르셀로나 치료법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빠르게 결정을 내려 감압술을 취소하고 스페인 수술 일정을 잡았습니다. (2012년 11월) 수술 바로 직후, 극적인 변화는 관찰할 수 없었으나 세게 쥐고 있었던 왼손이 좀 더 느슨해졌습니다. 폴란드로 귀국한 지 2주 뒤, 에밀의 상태는 상당히 악화됐습니다.(제 아들은 다시 한 번 걷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은 2주간 더 지속됐습니다. 그 후 점차 수술 전 상태로 돌아갔고 그 뒤에는 더 호전됐습니다. 악화로 인해 폴란드의 몇 의사들을 찾아갔을 때 한 신경과 전문의는 수술은 에밀에게 도움이 되지도, 그렇다고 손상을 입히지도 않았다고 했으며 이 이유로 저희가 “속았다”고 이해했습니다. 그 의사는 저희에게 새 MRI 촬영 의뢰서를 줬습니다. 2013년 4월 병원에 가서 의사들에게 에밀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아무도 저희를 믿지 않았습니다. 수술 3개월 전 MRI와 비교했을 때, 변화는 매우 적었으며 수술 전의 질병 진행은 매우 우려할만한 속도였기 때문에 이 사실은 저희에게 좋은 신호였습니다. 신경과 의사들은 에밀의 두개골 절개술을 했던 외과 의사에게 (더 높은 위험이 따르는) 공동 배액 수술을 문의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반대로 바르셀로나 신경외과 의사에게 연락했고 포즈난의 방사선과 의사와 상담을 했습니다. 방사선과 의사는 수술 전·후 공동 크기를 자세하게 측정해줬으며 이 상담 후 저희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는 저희대로 에밀의 완화된 증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에밀은 더 잘 걸었고 서 있을 때 더 곧은 자세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강도 높은 재활 훈련도 했습니다.) 다음 MRI는 2014년 2월에 찍었고 (10개월 간격) 새로운 변화는 없었습니다. 현재, 에밀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고 다른 아이들처럼 춤과 유도, 축구와 수영을 합니다. 재활 치료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벽히 낫지 않았고 대소변 조절 문제가 아직 있지만, 전보다는 훨씬 잘하고 있습니다.; 알몸 상태에서 저희 아들을 보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유치원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느리게 달릴 수는 있습니다.) 2014년 3월, 1년 전에 수술이 에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던 신경과 의사를 찾아갔고 그녀는 저희에게 에밀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빈스키 반사가 없어짐)

수술과 재활 훈련 덕분에 에밀의 상태가 나날이 좋아져 저를 항상 놀라게 합니다!

Carmen.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아놀드 키아리 제1형.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26 7월, 2012

수술 날짜: 2011년 1월

슬프고 긴 이야기지만 개인 후기처럼 여러분께 몇 가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외견상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8살 때 이상한 느낌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에 심한 돌팔매질을 당한 것 같았고 어지럼증, 좌골 신경통, 사경(torticolis), 심한 두통 등..

10살이 됐을 때, 한 의사는 월경을 빨리하면 모두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문제는 더 커졌습니다. 14살 때, 의사들은 제가 아주 심한 척추측만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더 많은 통증과 피로감이 있었고 할머니처럼 보였습니다. 23살 때, 약하게 넘어졌는데(부러진 곳 없이) 오른손이 위축됐고 마비됐습니다. 8개월 후, C2-T11-12 척수공동증을 동반한 키아리 기형 제1형을 진단받았습니다. 27세에는 경막 형성술 및 후두하 두개골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던 쥐 나는 증상은 사라졌으나, 다른 증상들은 저를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몇 해가 지나면서 다른 증상들이 생겼습니다.: 손가락 심한 통증, 상지 움직임 제한, 호흡 부전, 실성증, 발성 장애 등. 2011년 초, 많은 조사 후에 키아리 연구소, Royo 의사와 그 의료진의 손에 저를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행운이었습니다!

통증과 힘 측면에서 호전됐고 지금 저는 저녁에 잠을 잘 수 있습니다. 40년 이상에 걸친 투병 끝에 조금의 안정을 얻었습니다. 몇몇 손상은 항상 저를 따라다니겠지만 그래도 고문 정도는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병을 얻은 분들께 귀하의 상태와 병의 악화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종사 절단 수술을 생각해보시라고 간청합니다.

몇 달 전, 제 딸도 Royo 의사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른 의사들은 두개골 절제술을 하고 싶어 했지만, 저를 속일 순 없었습니다.

제 고용 상태가 좋지 않아 더 이상의 개인 정보를 드릴 수 없는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저와 연락을 취해주시길 바랍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전화번호: 91 7954470

Diego Tasca. 흉추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척수병증.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방정중적 경추 중앙 척수 허혈.

Publicado por ICSEB el 9 11월, 2011

diego_tasca

수술 날짜: 2009년 5월

italia

저는 Diego Tasca입니다. 저는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이라고 불리는 희소병에 걸린 환자입니다. 2003년 심폐 정지가 오면서 이 병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Piove Di sacco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심폐소생술 후 입원 조치 됐습니다. 다양한 검사 후 이 병을 진단받았고 제게 이 이상한 이름을 가진 병은 두려움이었고 특히 “희소”하다는 점이 더 그랬습니다. Piove de Sacco 병원에서 퇴원 후, Padova의 신경외과에 모든 검사지를 가지고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희소병이라고 해도 완벽히 알려지지 않은 병은 아니었기에 제 문제의 해결법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제 주치의의 제안으로 신경외과 과장인 R.S. 의사의 진료를 예약했습니다. 그 진료에 (걱정을 많이 하시지만 그래도 강직한) 제가 힘들 때 항상 같이 있어주신 어머니와 함께 갔고, 저의 임상 사례를 S. 의사의 손에 맡겼습니다. 의사는 Piove de Sacco 병원의 영상 자료와 의료 진단서를 보면서 매우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두려움도 약간 진정됐습니다. 제게 전혀 걱정할 게 아니고 맹장염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후두저의 작은 절개로 끝나는 수술이고 하루 입원, 그리고 퇴원할 수 있는 수술이라고 했습니다.(정확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한, 종이에 조그마한 그림을 그리며 질병과 수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머리카락조차도 자를 필요가 없습니다.”(당연히 제가 제일 걱정했던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찌 됐든, 그 의사가 제게 용기를 심어줬고 수술 자리가 생기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Padua 신경외과에서 가장 명망있는 의사인 S. 의사의 진료였기에 공보험에서는 커버가 되지 않아 190유로를 냈습니다. 한 달 반은 제 일상으로 돌아가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수술 자리가 났다고 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그들이 말한 것처럼 짧은 입원을 위해 필요한 것을 챙겨 작은 짐을 싸고 Padua 병원의 신경외과로 갔습니다. 2003년 7월 16일에 병원으로 가서 XXXXX 환자 등록 번호를 받고 수술 대기를 위한 침대를 배정해줬습니다. 다음 날, 모든 검사를 했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습니다. 8일이 지나고 2003년 7월 24일 C1 척추 후궁 절제, 경막 성형, 후두하 두개골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수술명을 말하는 건 쉽지만 수술 받는 것과 그걸 견디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술 후, S. 의사에 의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중환자실에서 깼습니다. 어떤 움직임에도 무감각했고 여기저기 튜브가 꽂혀있었으며 눈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저는 자문했습니다. 쉬운 수술이라고 하지 않았나?) 저는 그들이 정확히 제게 뭘 했는지, 수술이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모릅니다. 일어났을 때, 시야가 흐릿해 보여서 영상들을 구분할 수조차 없었고 중환자실에 며칠이나 있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S. 의사가 한 말은 믿을 수 없기에 상당한 날이었을 것입니다. 겁에 질린 눈으로 하루종일 병실 천장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오늘이 며칠인지, 며칠이나 거기 있었는지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극복할 수는 있을는지.. 계속해서 이런 질문들만 했습니다. 그 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이동했고 거기서 진실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는데.. 병원 입원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계속해서 고열과 격통이 있었고 절개부위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작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도 머리 뒤쪽에 그 부위가 아주 잘 보입니다. 주사 바늘이 꽂혀있었고 바이탈 사인 체크 기계와 반짝거리며 제 상태를 체크하던 이상한 기계들이 온몸에 연결돼 있었습니다. 지금도 미래에도 그들이 수술에서 제게 뭘 했는지 저는 잘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두개골에 판이 있다는 걸(생각하기론 플라스틱 재질) 알고 있지만 나머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임상 병력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지 통증과 수술 전날 그들이 제게 말했던 거짓말로 인한 후회만 기억합니다. 제 주위에 저보다 더 심한 병을 앓는 환자들이 있었기에 용감할 수 있었습니다. (혈관종, 종양 등.. )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제 증상과 질병의 중함을 그때까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13일간 병원에 입원했고 2003년 7월 29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수술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의 회복 기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정확히 시간으로 말할 순 없지만, 통증은 기억합니다. 정말 심했습니다. 원래 이런 수술을 받고 나서의 상태는 다들 이럴 거라고 하루하루 저를 응원했습니다. 고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재채기로 뇌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토하지 않고 재채기가 나오지 않길 기도했습니다. 이 두 개는 정말 치명적이었습니다. 바로 응급실에 입원했는데 그들은 왜 열이 내려가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수술의 금기나 위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플레이트 물질에 대한 알레르기거나 거부 반응일 수 있다고 했으나 그들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저는 문제가 뭔지 보고 해결하려 다시 머리를 열어보려는 그들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저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어떤 종류의 치료던 닥치는 대로 받았습니다. 더 아프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의사가 약물 요법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많이 아팠지만 목에 연결한 기계를 통해 약을 주입했더니 한결 나아졌습니다. 조금씩 더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힘든 건 지나간 듯 보였습니다. 통증으로 얼룩졌지만 그래도 보통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몇 개월 후 MRI, CT 등의 검진을 했습니다. 다 괜찮아 보였습니다.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기 어려웠지만 3년에 걸쳐 신체와 정신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제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주치의를 통해 다양한 검사를 했는데 검사의 결과는 하나같이 다 정상이었습니다. 수술 경과는 아주 좋았으나 계속해서 소득 없는 검사를 했습니다. 그들은 제 정신적 문제라고 했고 얼마나 완고하게 주장했던지..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미친 건 제가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병, 질병의 악화에 대해 알지조차 못했습니다. 한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우울증 관련 클리닉에 입원했습니다. 저는 정말 우울했습니다.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두 번 했습니다. 상실감을 느꼈고 저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되는 쓸모없는 사람처럼 같았습니다. M. 의사와 진료를 보며 제 병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클리닉에 입원을 지시했습니다. 정확한 입원 날짜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결국 그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첫 날 부터 그 장소는 감옥 같았습니다. 전혀 듣지 않는 많은 약을 복용했는데 병과 제 기분은 계속 악화만 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말동무가 필요했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많은 친구를 만들었습니다. 제 상태는 계속 나빠져 갔습니다. 그때까지 흡연을 안 했지만 그 장소는 저를 흡연자로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세 갑을 피웠습니다. 자유가 박탈된 우리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그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과 연락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집에서도 계속 먹을 수 있는 약과 정신과 정기 검진을 처방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제 삶은 망가진 상태였으며 통증은 계속 심해졌습니다. 상태가 이랬지만, 직장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약이 제 성격을 변화시켰고 저는 더 이상 저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힘을 내서 살아갔습니다. 2008년까지 진료와 검사를 계속해서 받았습니다. 2008년, 병이 몸을 망가뜨리기 시작했습니다. 85kg이었던 몸무게가 20kg이 빠지면서 65kg까지 나갔습니다. 우울증은 저의 일부였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몸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기 시작했고 왼쪽 몸이 마비됐으며, 뜨거운 것이나 차가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하면서 상처가 생기는 것도 알지 못했고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걱정되기 시작해서 의사에게 이를 설명하니 정신적 문제라고 설명을 되풀이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병인지 알지도 못하다니. 의사가 아닌 저였지만 컴퓨터를 붙잡고 검색을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드디어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제 병은 희소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연구소를 발견했습니다. 이 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에서는 병에 대해 설명했고, 그들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메일로 그들과 연락을 시작했고 그렇게 저는 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Miguel B. Royo 의사의 진료 필요성과 종사 절단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제 모든 자료의 송부를 요청했습니다. 같은 기간, 저는 Padua의 신경외과 외래 진료를 봤습니다. 의사에게 제 문제와 스페인의 수술 치료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부정적 의견이었습니다. 그는 병을 알지 못했고 그 의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어떤 의사도 그렇게 위험이 크고 유용하지도 않은 수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제 유일한 관심은 제 문제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었습니다. 시도해봐야 했습니다. 저는 스페인으로 가서 연구소에서 Royo 의사의 진료를 봤습니다. 그들은 제 문제를 정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병은 많이 악화돼 있었습니다. 의사는 CIMA 병원에서 몇 검사를 처방했고 거기서 아놀드 키아리 제1형 뿐만 아니라 왼쪽 몸의 마비에 영향을 미친 다른 심각한 병들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척수공동증, 견인 척수증, 경추 전만증, 흉추 척추측만증이었습니다. 종사 견인이 경추 2개, 흉추 2개, 요추 2개, 이렇게 “가장 심한 상태의” 6개의 추간판 탈출 또한 일으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이 모든 손상을 해결해주진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같은 영상을 보고 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병은 이미 많은 손상을 유발하며 진행이 많이 된 상태였고 저는 더는 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수술은 3시간이 아닌 30분이 걸렸고, 수술에서 깨자마자 저는 침대에서 힘차게 일어났습니다. 연구소에서는 검진 날짜를 정해줬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전과 다른 아픔이 있었지만 힘은 더 났습니다. 진솔하고 정직하며 친절한 의사를 만난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검진을 갔습니다. 또 다른 곤란한 비용이 들었지만, 저는 다시 한 번 Royo 의사 덕분에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검진에서 Royo 의사는 수술의 긍정적 결과에 놀랐습니다. 저와 함께 기뻐해 줬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양다리 움직임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이는 병과 관련은 없고, 종사 견인의 영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견인이 요추 추간판 탈출을 일으켰고 좌골 신경을 손상시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경근 파괴술이 필요한지 보기 위해 주사 바늘과 X 레이 기구를 이용해서 침투하는 특정 검사를 해아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게 희망을 돌려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많은 힘을 주신 점 Royo 의사께, 연구소 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TASCA DIEGO. 이메일: [email protected]

Victoria Elena Estrada.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Publicado por ICSEB el 20 10월,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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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11년 2월

Colombia

후기

저는 Victoria Elena Estrada입니다. 콜롬비아 Medellín 출신이며 51세입니다. 4년 전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을 진단받았습니다. 감압술을 받고(전혀 도움이 안됐던) 상대적으로 6개월 동안 상태가 괜찮았으나 새롭게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증상들은 제 삶의 질을 떨어뜨렸습니다. 매일 머리가 심하게 아팠고 이로 인해 웃거나 기침, 재채기, 머리를 숙이는 것이나 운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같은 이러한 것들이 제 병을 상기시켰습니다. 손에 힘도 안들어갔습니다. 가끔 손에 감각이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손에 심한 불쾌함이 들어 손을 흔들어 느낌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8년 전부터 계속된 심한 미골 통증으로 특정 쿠션 위에 앉아야 했습니다. 전신 마취와 함께 미추 신경공 차단술도 받았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도했던 이 옵션들 덕분에 저는 더 멀리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 연구소에서 제 문제의 해결법을 찾아냈고 그들에게 연락해 제 검사 결과를 보내줬습니다. 그들은 제게 종사 절단 수술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병을 뿌리 뽑는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진행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행과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벌써 수술 받은 지 8개월이 됐습니다. 지금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다시 삶으로 돌아왔고 저는 행복합니다. 지금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의 제 모습과 같습니다. 현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잘 웃고 운동도 합니다. 이제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걱정도 없습니다. 제 아이들과 남편은 저를 보며 정말 행복해합니다. 이제 엄마와 배우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이 수술은 아프지 않은 수술이었습니다. 골반 엉덩이 부근에 작은 절개를 해서 약간 불편할 뿐입니다. 하지만 8일이 지난 후 수술받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것입니다. 콜롬비아로 돌아갈 때 비행 시간이 11시간이었지만 여행하는 데 문제없었습니다. 2개월 후 천천히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후기를 읽는 분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단계면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이 수술을 고려하십시오. Royo 의사와 그 의료진은 이 병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잘 아는 전문가입니다. Royo 의사는 이 질병 연구에 수년을 바쳤습니다. Royo 의사 선생님, 존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번호: (011574) 3165295566 메일: [email protected]

Victoria씨 영상 후기: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ZE72SIHPaE

Paula Gonçalves Fernández. 척수 견인 증후군,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편평두개저, 두개저함입, 치아 돌기 후굴, 경수 부종

Publicado por ICSEB el 19 4월, 2011
paula_goncalves 수술 날짜: 2010년 5월 portugal 2011년 4월 10일 안도라 안녕하세요, 저는 36세 Paula Gonçalves Fernández입니다. 수년간의 진료와 모든 종류의 수많은 검사(아무런 소득 없었던) 후 2009년 7월 안도라의 Miralles 의사는 제가 받은 모든 검사지를 보고 그때까지 한 번도 뇌와 척추 MRI를 찍은 적이 없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그렇게 아놀드 키아리를 진단받았습니다. 그 즉시 저를 바르셀로나의 한 병원으로 보냈고 그곳의 환자 응대는 아주 좋았습니다. 거기에선 제게 두개골 개두술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009년 8월에 수술을 받았고 다 문제 없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두통이 계속됐는데 통증을 완화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 신경외과 의사가 목과 등 근육을 이완하는데 수영이 좋다 하여 배영을 배웠습니다. 2010년 1월, 이 신경외과 의사는 제게 티타늄 재질의 플레이트로 머리와 목 사이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들에게는 아주 좋지 않은 소식이었는데,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평생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목을 양옆으로 돌리지도 못할 수 있었습니다. 신이 제게 포기하지 않을 힘을 줬습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바르셀로나 키아리 연구소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응대를 아주 잘해줬고 며칠 후의 진료를 잡아줬습니다. Miguel Royo 의사를 처음 봤을 때, 이 의사가 나를 도와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0살부터 이 상태로 있었는데 즉 6년 동안 고통받아서 몸무게가 42kg까지 내려갔습니다. 첫 신체 검사 후, 이 의사는 제게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확신해줬습니다. 그 많은 고통을 겪은 뒤의 저는 주저하지 않고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거의 1년 전인 2010년 5월 5일 바르셀로나 CIMA 병원에서 Miguel Royo 의사의 종사를 자유롭게 해주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 경우는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왜냐하면 저조차도 아주 놀랐기 때문입니다. 제 상태는 아주 나빴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해결책을 주지 않았었고 혼자서 걸을 수도 없었으며 제 남편이나 13살과 8살 된 제 아이들을 붙잡고 가야 했습니다. 현기증 때문에 그들을 붙잡아야 했습니다. 엄청나게 추위를 느꼈던 순간이 있었고 발과 손에 감각이 사라진 적도 있었고 제 눈은 침착하게 깜박이지 않았습니다. 14년 전부터 운전면허가 있었는데 운전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신께, 그리고 Royo 의사께, 그 의료진께 감사하게도 현재는 혼자 걸을 수 있고, 수술 전에는 차가 오는지 양 옆을 보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도로를 잘 건너갈 수 있습니다. 직장까지 운전도 합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휴식을 위해 침대나 소파에 누웠을 때 텔레비전을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제 정상 체중인 55kg이 나갑니다. 삶을 살아갈 더 큰 힘이 생겼고 더 예뻐졌고 행복합니다. 전에는 활기가 없었고 슬펐으며 제 작은 아들을 씻기는 것조차 도와주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었습니다. Royo 의사의 진료를 보러 간 날과 수술받은 날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CIMA 병원에 월요일에 입원했습니다. 그들의 환자 응대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 이미 저는 안도라 제 집에 도착했습니다. 4개월 후 몇 가지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 삶에서 어떤 것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느낀 첫 번째 변화는 길을 똑바로 걸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점점 현기증이 덜했고 안진 또한 하루 하루 감소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더 잘 볼 수 있었습니다. Royo 의사와 그 전문 의료진께 좋은 의사일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도와주려고 노력해 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같은 질병을 앓는 모든 분께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Royo 의사의 진료를 보시길, 이 의사가 여러분을 도우리라는 것에 믿음을 가지시길, 희망을 잃어버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Paula Gonçalves Fernandes 이메일: [email protected]

Kerrin Allen. 특발성 척추측만증,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C4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0 12월,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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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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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호주 시드니 출신 Kerrin Allen이라고 합니다.

Royo 의사와 그의 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를 발견하게 되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었던 것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됐기에 제 이야기 또한 공유할 수 있어 기쁩니다. 2007년 8월 저는 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뒤 키아리 1형과 흉추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았습니다. 심한 두통, 오른 다리 위약감과 통증이 증상이었습니다. 사실 오른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마비가 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2008년 3월 저는 호주 시드니에서 후두와 감압술을 받았습니다. 다리에 혈전이 생겨서 수술이 지연됐습니다. 수술 후 처음에는 증상이 상당히 완화됐습니다. 두통은 줄었고 다리 마비는 위약감만 남아서 다리 보조기를 차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른 다리 위약감은 심해졌고 왼쪽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더이상 양 다리 보조기 없이는 설 수 없었습니다. 두통과 등 통증, 장 문제도 심해졌고 양 다리에 통증과 저림, 양 발바닥에 작열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양 손에 이상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시드니 병원에 다시 입원하여 검사를 했는데 뭐가 이 증상을 유발하는지 알지 못한 채 퇴원이 지시됐습니다. Royo 의사가 제 MRI를 봤고, 저는 2008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가 저를 도울 수 있다고 해서 정말 놀라웠고 심지어 제게 척추측만증, 안진이 있고 오른손 악력이 약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2008년 12월 진료 후, 최소 침습의 종사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증상의 악화를 예방하고 키아리 기형의 원인을 제거하는 수술이었습니다. 수술 통증은 약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 양 다리 통증, 흉추부와 양 다리의 저림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술 9시간 후 아무 문제 없이 보행할 수 있었습니다. 더 똑바로 설 수 있었고 두통이 사라졌으며 더 잘 볼 수 있었고 더 또렷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방광 문제도 사라졌고 저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약한 증상들은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신경계가 회복 및 안정화되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점은 돌이킬 수 없는 신경 손상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근력이 회복되면서 보행은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수술 결과에 아주 행복합니다! Royo 의사의 연구와 그의 수술법이 제 인생을 완벽히 바꿨습니다! 이 의사와 의료진은 정말 전문가이시고 사람들을 돕는 데 열정적이고 이해심이 많은 분들입니다. 호주의 의사들이 이 기법을 받아들여 여기 사람들 또한 도울 수 있길 바랍니다. 평생 Royo 의사와, Samantha씨, 연구소 직원께 저와 제 가족을 도와주신 점 감사드릴 것입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는 경우, 제게 자유롭게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Enara Gorbeña. 척추측만증,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4 7월,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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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7년 7월

안녕하세요 저는 21세 Enara Gorbeña 입니다. 저는 아놀드 키아리, 척수공동증,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습니다.

제 문제들은 26도 척추측만증을 발견했을 때인 8살 경부터 시작됐습니다. 정형외과 코르셋 사용과 수영을 통해 고쳐보려고 했습니다. 15살 때, 이미 코르셋을 7년 동안 하루 23시간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수영할 때만 코르셋을 벗었습니다.) 그때 생각지 못하게 척추측만증이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외상외과 진료를 보기로 했고 거기서 척추측만증의 원인인 척수공동증을 진단받았습니다. 이 의사는 저를 신경과로 보냈습니다. 공공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명성있는 사병원에서도 확인을 받고서 상담받은 모든 전문의의 만장 일치된 판단으로 15살에 경막 성형술, 후두하 두개골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힘들었던 수술이 제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망쳐놓은 문제의 궁극적 해결법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불행하게도 공동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고 작년에 외상 전문의가 말해준대로 척추측만증이 지치지 않는 기세로 진행됐습니다. 이 상황이 닥치기 전, 그 의사의 초기 제안은 척추를 곧게 만드는 수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경외과 관련 진료에서 사지 마비 위험성 때문에 그 수술은 제외시켰습니다. 고민하던 중, 인터넷에서 신경 연구소 홈페이지를 발견했고 가입한 환자 카페에서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어떤 여자분을 알게됐습니다. 그녀 덕분에 Royo 의사가 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여름 종사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매우 만족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새 MRI와 전 척추 X선 검사를 하기 전까지는 경과에 대해 아직 말할 순 없지만, 이 방법을 썼더라면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됐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 경험담을 읽고 있는 여러분께 Royo 의사의 수술이 제게 얼마나 큰 희망을 줬는지 전달하고 싶습니다. 제 남은 인생의 통증이나 손상, 신체적 한계에 대해 말하지 않고 제 미래에 대해 말했던 의사는 Royo 의사가 처음이었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다음의 주소로 연락해주십시오. [email protected] 감사합니다.

Herminia Carrizosa Guerra. 척추측만증,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척수공동증

Publicado por ICSEB el 14 12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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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날짜: 2006년 12월

안녕하세요. 저는 말라가에 사는 57세 Hermina입니다. 저처럼 훗날 휠체어 생활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환자들에게 희망이 존재한다고 알려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제 이야기를 씁니다.

저는 1987년부터 아놀드 키아리와 척수공동증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97년도까지 제 통증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이 10년간 저는 외상 전문의 진료, 신경학과 진료를 다 돌았고 신기하게도 물리치료 보러 갔다가 병을 알아냈습니다. 그 시점부터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저는 두개골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높은 위험이 있는 수술이었으며 회복하는 데 6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수술 위험성에도, 회복은 잘 했지만 통증이나 증상들은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그 반대로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수면 무호흡증과 위궤양도 생겼습니다. 이 위궤양 때문에 1년 이상을 액체와 묽은 죽으로 영양을 섭취해야 했고 심지어 며칠은 음식을 목으로 넘길 때 너무 아파서 먹지조차 못했습니다. 척추측만증의 통증들로 상황은 더 악화됐습니다. 그 당시 저는 완전히 분노하고 절망적인 상태였으며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던가요. 2006년, 실신을 한 적이 있습니다.(그 이유는 아직까지 모릅니다.) 땅으로 엎어지는 바람에 양 발목을 다쳤습니다. 그때부터 병마와 싸우려는 제 노력은 수그러들었고 제게 남은 건 단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망한 제 딸들은 인터넷으로 조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기적적으로 Miguel B. Royo 의사를 발견했습니다. 저희는 희망에 차서 메일을 보냈고 답변이 바로 왔습니다. 딱 15일 뒤, 바르셀로나에서 저를 맞이해줬습니다. 제 모든 희망을 이 의학적으로 천재적인 사람의 손에 맡겼습니다. 2006년 12월 13일에 검사를 하고 14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12월 15일에 근 1년간 거의 먹지 못했던 저는 퇴원하기 전 2개의 마들렌을 아침으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바보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제게 있어서 새로운 인생의 첫번째 날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증상이 완화됐습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이미 생긴 손상 또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사 수술 덕분에 제겐 새로운 미래가 있습니다. 제 오래된 약조차 먹지 않는 것을 고려했을 때, 통증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오른손 촉각도 회복했고 저림도 멈췄습니다. 이젠 어지럽지 않고 다리도 아프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저는 더 기쁨에 차있고 20살 때보다 더 활동적이며 전보다 낫습니다. 적어도 그런 느낌입니다. 앞서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수술 날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먹고 있습니다. Royo 의사께 본인의 재능을 활용하고 헌신하여 이 병에 맞서 싸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