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stina Marques Gonçalves, 특발성 척추측만증, 척수 견인 증후군.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다발성 추간판 질환.

Published by at 10/10/2013


수술 날짜: 2011년 7월

제 이름은 Celestina Marques Gonçalves입니다. 브라질의 Porto Alegre/RS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삶의 의욕이 넘치고 아주 행복합니다. 저는 수 년동안 심한 머리와 목덜미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편두통 진단을 받았는데 경추의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2006년 11월 중국 전통 침술 실습을 위해 중국에 갔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파서 수업을 끝마칠 수 없었습니다. 침을 맞고 통증은 멎었는데 브라질로 돌아온 30일 뒤 중국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통증이 왔습니다. 장시간 비행과 여행 스트레스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 더 자주, 대략 3개월 마다 그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마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았고 3개월은 괜찮았습니다. 그 뒤 다시 통증이 생겼는데 점점 그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혀 밑에 놓으면 몇 분 안에 통증이 사라지는 약을 발견했습니다.

2009년. 거의 매일 두통이 생겼습니다.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해 침을 맞거나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다른 증상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한 번도 두통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 발성 장애와 실성증까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치료전문가 및 침술사로, 교육 수업을 진행하는데 자주 목소리에 문제가 생겼고 심지어 수업 중에 목소리가 안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신속히 전문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하자 저를 다른 전문의들에게 보냈습니다. 어떤 의사도 제 목소리 문제의 원인이 뭔지 찾질 못했습니다. 같은 해, 다른 증상도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상에는 목덜미의 심한 강도의 욱신거리는 통증, 머리 압박감, 시야 흐려짐이 있었습니다. 며칠지 지나고 통증은 계속 심해져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작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뒤척이며 밤을 보냈습니다. 좀 편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건 바로 머리 절반을 침대에 걸치고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안에서 느껴지던 압박감이 줄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면서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야간 무호흡증이 생겼고 앉아서 잤습니다. 낮에도 자주 호흡 곤란이 왔습니다. 심장에 관련된 증상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그 사이 저는 가능한 모든 전문의 진료를 봤습니다. 8명의 일반의와 5명의 전문의 진료, 엄청나게 많은 검사를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들은 경추 부위의 문제라고만 생각했고 어떤 수술도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찍은 검사에서 이미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이 나타났었지만 제가 그걸 알게 된 것은 10년 후 였습니다.

하루는 뇌 자기 공명 영상을 찍는 꿈을 꿨습니다. 월요일이었는데 일어나서 (그보다는 기어서) 진료를 본 7명의 신경과 의사 중 한 명에게 전화했습니다. MRI 요청서를 부탁했는데 그 의사는 제 상태는 괜찮으니 MRI를 찍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시 요청서를 요구했습니다. 다음 날 바로 MRI를 찍었고 같은 주에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 제1형 진단을 가지고 그 의사 진료를 보러 갔습니다. 그는 저를 다른 의사에게 보냈고 또 다른 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의사 7명의 진료를 봤는데 한 명만이 두개골 절제 수술 경험이 1회 있었습니다. 제게 수술이 어떤식으로 진행되는지 동반되는 위험은 무엇이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양 쪽에 위험이 존재한다면, 병으로 인한 돌연사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주가 제 아들이 캐나다로 1년 유학을 떠나기로 한 주였습니다.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에게도 이를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남편에게 털어놨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계속해서 상태가 악화됐고 양 다리의 힘이 풀리고 괄약근 조절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을 할 수도, 걷지도 운전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섯 발자국 걷는 데에도 호흡 곤란이 왔고 피로감으로 누워야했습니다. 이 모든 게 등 문제 때문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딸은 제게 생긴 일들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저는 딸을 직접 만나는 걸 피해왔습니다.) 저는 결국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전성 병 때문에 제게 생긴 일들을 말해줬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큰 위험을 띈 수술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딸은 절망했습니다. 딸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통증, 고통으로 찬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기위해 인터넷으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딸은 3일 후,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정보를 들고 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딸은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각종 모임, 커뮤니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Royo 의사 집도 수술을 받은 환자들과 연락했습니다.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원격 진단 방향을 알기 위한 지시 사항에 따라 Royo 의사가 검토할 수 있도록 모든 임상 자료를 보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수술에 적합한 사례일 수 있다는 정보를 받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 모두 의심했습니다.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브라질 Porto Alegre에 있는 신경학과 의사들의 무지 때문에 Royo 의사가 말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걷고, 숨이 잘 쉬어지고 잘 자고 괄약근 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신적으로 영기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2011년 7월 바르셀로나로 갔습니다. 종사 인대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다음 날 통증 없이 걸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어떤 통증도 없이 관광을 하며 바르셀로나에 10일간 머물렀습니다. 브라질로 돌아왔을 때, 비행기에서 느낀 머리 압박감도 사라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한, Royo의사는 3개의 경추 추간판 탈출에 대해서도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이건 브라질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Royo 의사가 집도한 종사 절단 수술 5개월 뒤 플레이트 3개와 8개의 나사를 넣었습니다. 경추 수술 뒤 목 움직임이 꽤 나아졌고 통증은 사라졌습니다. 손가락의 감각도 완화됐습니다. Royo 의사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스페인에서 돌아왔을 때, 진료를 봤던 의사들에게 가서 예전 증상들이 이 증후군과 연관이 있었어서 폐, 심장, 호르몬, 이비인후과 검사, 신장, 시력 검사에도 제대로 된 진단을 받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증상 연구를 위해 입원했던 9살 아이가 바로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모든 분을 도와드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Royo 의사의 훌륭하고 진정성있는 수술을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Celestina Gonçalves

이메일: celestinha@terra.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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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키아리 & 척수공동증 & 척추측만증 연구소 한국어 담당 김샛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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